사랑하는 거 말고 나 좋아하냐고.

레이디 버드(2017)

by 한시영

(엄마) 그 옷 너무 핑크 핑크 아냐?
(딸)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돼?
(엄마) 어차피 내 말에 신경도 안 쓰잖아
(딸) 예쁘게 봐주면 좋잖아
(엄마) 미안해 사실대로 말한 건데 거짓말할걸 그랬나
(딸) 아니, 난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엄마) 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
(딸) 근데, 날 좋아하냐구.
(엄마)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딸)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 영화 <레이디 버드> 중에서

내 눈에 우리 솔이는 앞머리 있는 단발머리가 제일 예쁜데, 기어코 앞머릴 다 올린다고 할 때. 그거 별로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꾸욱 참는, 그렇지만 표정엔 못마땅함이 한가득인 엄마로서의 나.
엄마에게 사랑받기 원했던,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딸로서의 나.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며 딸이 됐다가 엄마가 됐다가.

어디서나 주인공이 되고 싶고 좋아 보이는 건 다 갖고 싶지만 부모도, 사는 집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크리스틴.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늘어가고, 대학 진학을 위해 떠나야 할 시간은 가까워져 오고.

중간중간 일시정지를 했는데 모두 크리스틴이 쳤던 사고나 거짓말이 들통나기 직전의 장면들. 내가 한 잘못을 들키는 것처럼 심장이 쫄깃해서 마냥 볼 수가 없어 리모컨을 쥐었다 놨다 했다.

아빠는 고맙고 사랑하고 좋지만 사랑받고 싶은 건 엄마인 크리스틴. 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엄마에게만 투덜댄다. 그리고서 싸운다. 목적은 사랑인데 늘 끝은 싸움이 된다.

딸이었던 동시에 엄마인 나는 누구 편도 들 수 없어 영화 보는 내내 마음이 외줄 타기를 하는 냥 아슬아슬하게 중간을 지킨다. 영화 속 엄마가 안쓰러운 맘이 들라치면 딸이 안돼 보이고. 보다 보면 나와 내 부모, 내 딸과 얽히고설킨다.

중학교 때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피어싱을 하고 온 날. 머리 감고 수건 두르고 나오다 엄마에게 들켜 혼이 난 일. 정확히는 네가 어떻게 그런 일을 내게 상의도 안 하고 했느냐며, 엄마에게 실망을 안겨준 일.

대학 시절, 자취방을 옮기고 남은 보증금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엄마 뒷목을 잡게 한 일.

스물다섯 먹고 이제 결혼할 거라고 결혼을 통보한 일.

맞은 건 생각나도 때린 건 생각 안 난다고, 자라면서 딸로 엄마에게 했던 일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영화를 보고선 엄마에게 거짓말한 거 속인 거 잘못한 거 속상하게 한 일들이 우르르 나와버렸다.

이제 내게 엄마는 없으니 딸로 살아갈 순 없고, 딸로 살아왔던 날들만이 남아있을 거다. 대신 솔이 현이의 엄마로 딸들에게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고, 그렇게 빈자리를 메우고 채우고 때론 빈 채로 허전히 살아가겠지.

무튼, 좋은 영화.


내일 집 떠나는 딸에게 줄 편지를 쓰는, 사랑하는 것도 편지를 쓰는 것도 서투른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