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 아이야

살아가는 시간이 생존이었던 아이

by 한시영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 아이야.

스스로가 자신의 보호자였던 아이의 이야기야. 그 아이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세계는 커져갔지. 실제로 세계의 크기가 커졌다는 게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이 차지하는 밀도가 더 촘촘해졌어. 그 속에 있는 아이도 숨이 막혀갔어. ‘나 자신으로 가득 찬’ 세계. 아이가 따라야 할 것도 아이 자신이야. 아일 지켜줄 것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그니까 아이가 믿을 건 아이뿐이었지.

그 아이와 함께 살았던 혈연관계 어른들이 들으면 혀를 끌끌 찰 이야기였지. 기껏 거둬줬더니 배은망덕하다고. 결국 이럴 줄 알았다고. 티는 안 내겠지만 아마 그렇게 여겼을 거야.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는 말도 덧붙였겠지.

아이는 기억이란 시스템이 작동되는 시점부터 자신을 지켜야 했어. 물론 누구나 다 자신을 지켜야 하지. 그치만 어린아이가 생존을 위해 안간힘 쓰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어린아이의 세계라고 하기엔 생존이란 영역에 지나치게 커다란 무게가 주어졌어. 모든 세상에 균형만 있진 않겠지만 이런 불균형은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어.

어린아이가 생존에 지나친 에너지를 쓰는 대가, 알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에너지의 개념도 생존의 개념도 모르는 아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결과는 그 누구에게도 영향이 미치지 않아. 그 아이 자신을 좀먹지. 그리고 그 훗날 아이가 관계 맺는 주변인들도 좀먹게 되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그 아이에겐 생존이야. 관계 또한 생존이야. 사랑받으려 애쓰는 것들. 평생을 몸에 힘을 빼지 못한 채 사는 거지. 근육도 수축과 이완이 있대잖아. 이 아이는 수축만을 한 채 살아가게 돼. 그래서 늘 피로하지.

존재 자체에서 오는 침착함과 평안함. 그건 그 아이가 가질 수도 없었고 받을 수도 없었고, 되고 싶어도 넘볼 수 없는 그런 영역이야.

행동과 결과로 보상받던 아이가, 본인이 무엇을 이룬 것에 대해서만 주목을 받아온 아이가 존재를 깊이 생각하고 느낄 기회가 있었겠어. 머리로는 알고 있지. 나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머리로만 알 수 있는 명제였어. 평생을 죽었다 깨어나도 갖지 못할 장벽 같은 거.

어느 날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했던 날이었어. 그런데 몸만 큰 어른들은 아이를 볼 능력이 없었어. 본인들이 흘린 피, 받은 상처만이 보였지. 그렇게 아이는 상처도 자기가 봉합해야했어. 어린 아이가 상처 치료를 제대로나 할 수 있었을까? 통풍이 되어야 하는, 어른들의 판단이 필요했던 상처는 아이가 막아놓은 데일밴드로 인해 진물이 나고 새살이 돋지 못했지.

아이는 생각했어.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 아이구나.’ ‘내게 필요한 건 아이다움이나 순수함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강인함이구나.’ 물론 아이에게 아이다움 순수함 강인함에 대한 개념은 있지 않았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야. 그리고 그 강인함은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했어. 살아남아야 한다는 갈망, 억척스러움은 티가 나면 안 될 테니까. 동정받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지내온 아이는 늘 허덕여. 존재와 관계와 공감에 허덕여.

그 아이에게 목적성이 없던 적은 없었어. 쉽게 던지는 말 한마디도, 제스처도, 걸음걸이도, 모두 어떻게 보이기 위해서였고 사랑받기 위해서였지. 아이는 깨닫게 돼. 아,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대로 행동하면 날 진짜 그렇다고 믿는구나. 그래서 사랑받는구나.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란 사실은 잊은 채, 아니 잊지 않았지. 아예 경험한 적도 없었지.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아이의 진짜 모습, 그 자체로의 모습은 드러났고 반짝였어. 잘 정돈되고 짜여진 모습보다 오히려 더 빛이 났어. 그 아이 곁에 남은 사람들은 그 빛에 이끌려서 온 거야. 아이만 모르고 있었지.

그 아이는 아직도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 본인이 만든 규율, 논리, 이미지, 목적 속에서. 여전히 본인을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살고 있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아이가 살아온 방식이 그 아일 집어삼킨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 아이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해. 견고하게 지은 성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나봐. 부실공사. 그래 이 말이 딱 맞아. 부실공사였지. 어린아이가 조막만 한 손으로 죽지 못해 쌓아 올린 그 성이 견고할 수 있었을까. 그 성은 하나둘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수십 번이었지만 아이는 대피할 수 없었어. 믿을 수 없었어. 저 경고 사이렌도 거짓이라 생각했어.

이 성에서 나가면 잡아먹히지 않을까. 성에서 나갈 만큼 내 다리가 튼튼할까. 이미 몸이 커서 성문이 작아져 나갈 수 없는 건 아닌지 두려움은 걱정으로 치환되고 걱정은 또 다른 변명이 되어 아일 성에 가두지.

오늘도 아이는 그 세계 안에 갇혀 싸우고 있어. 이 세계에서 벗어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에 위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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