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고 하는 생각, 가족에 대해서
이대로 자기엔 너무나 억울한 날이 있다. 내겐 그 날이 오늘이다. 코로나로 4주째 두 아이를 집에서 보고 있으며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오롯이 이 두 아일 혼자 힘으로 케어한다. 퇴근 후 달려드는 아이들을 상대하고 내가 하지 못한 설거지를 하느라 저녁을 못 먹은 남편에게 비비고 만두라도 주려고 식용유를 발라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아이들을 재우려는 찰나 만두 냄새를 맡은 16개월 둘째가 쏜살같이 거실로 나간다. 아빠 무릎에 앉아 만두에 입을 대더니 눈을 번쩍 뜬다 그렇게 아이들은 잠이 깼고, 남편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을 재운 후, 이대로 잠이 들면 내 하루의 전부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채워질까봐 졸린 눈을 애써 비벼 잠을 깬다 그러고선 이런저런 중요치 않은 일들을 한다. 노트북을 열고 카톡을 켜서 막 사내아이 셋을 재운 작은언니와 1시간 수다를 떤다. 주제는 다양하다. 돈 아끼는 사람들의 마인드, 내년에 입주하게 될 공동체 주택 이야기, 막내가 새로 말하는 단어 등등 주제는 시시각각 바뀌나 그 누구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육아 동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란 이런 것인가. 아까 말한 중요치 않은 일들은 실은 그 일들이 내겐 중요한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목적 없이 수다 떨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
메일함을 열었다. 이슬아 작가에게서 온 메일이 제일 윗 줄에 읽지 않은 어두운 명암이 표시된 채로 남아있다. 일간 이슬아 구독자인 나는 매일 밤 12시-새벽 1시경 매일 한 편의 글을 메일로 받는다. 지난 이틀간의 글을 확인하지 못해서 읽을 글이 두 개나 된다. 오 다행이다. 잠 안 자고 포털 기사 보려다가 글을 읽게 되었으니 왠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느낌이 든다.
글의 주제는 ‘가족’이다. 두 글은 상/하 편으로 나뉘어 있으며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와 본인의 수필을 엮어서 글을 썼다. 중간중간 나오는 고레에다 감독의 말.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가족이니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가족이니까 들키기 싫다, 가족이니까 모른다 같은 경우가 실제 생활에서는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시다’ 홈드라마는 이러한 양면을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인의 홈드라마를 만드는 철학, 실제 가족 구성원으로 살면서 얻은 깨달음을 보며 나 또한 누군가의 가족이기에 생각에 잠긴다. 가족 지상주의인 한국에서 살면서 소중하지만 성가신 정도가 아닌, 소중하지만 날 미치게 만드는 가족 구성원을 가져 본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에 대해 큰 애착을 지녔다. 날 미치게 만드는 가족 말고, 내가 앞으로 갖게 될 가족에 대해서 그랬고 지금 가진 가족에 대해서도 그렇다. 더 많이 기대하고 더 연결되고 싶고 뭐 그렇다.
결혼을 빨리 했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은 코끝이 얼얼한 겨울이었다. 스물다섯 초겨울. 한국 사회가 말하는 정상가족을 빨리 만들고 싶었다. 여자로서 한 남자와 결혼을 통한 결합으로 안전해지고 싶었고 연애라는 불안정한 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낮추고 싶었다. 결혼이 주는,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 혹은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가보지 않은 길이 주는 불안보다는 지금 현재의 불안과 외로움이 더 컸다. 물론 결혼을 결심할 만큼 당시 남자 친구, 현재 비비고 만두 드시고 가장 먼저 주무시는 그분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데이트가 끝나면 헤어지기 싫었다.
워낙 변수에 대해서 통제하고 싶어 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 불안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기에 가족과 그 구성원 또한 내 손아귀에 넣으려는 모습. 남편의 생각과 느낌, 감정을 모두 다 알고 싶고, 내가 모르는 모습이 없었으면 좋겠고. 아이는 내 것 같은.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를 비춰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족이기에, 가족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서 모른다라는 그 말이 맴돈다. 가족 역시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는 일. 더 조심히 대하는 일. 배려하고 격려하는 일. 때론 모른 척 넘어가는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