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명절

엄마 없는 명절에 하는 엄마 생각

by 한시영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을 만지다 갑자기 눈물이 주욱 흐른다. 왼쪽으로 돌아누워 있다보니 오른쪽 눈의 눈물이 자꾸 왼쪽으로 들어간다. 아이에게 들킬까봐 눈물을 닦지 못한 채 몇 분. 베개에 맞닿아있는 왼쪽 뺨이 축축히 젖었다. 불이 꺼져있어 아이는 엄마가 우는지 뭐하는지도 모르고 잠이 들기직전 초점 풀린 눈을 하고 있는데 괜히 민망해서 말을 꺼낸다.

“솔이야. 엄마의 엄마 알지, 외할머니. 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널 얼마나 예뻐하셨을까. 넌 아기 때라 기억 못하겠지만 할머니가 널 너무 예뻐해서 하루종일 너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미 눈이 반쯤 감긴 아이가 엄마 말을 이해는 하고 싶으나 몰려오는 졸음 탓에 “뭐라고?” “응 뭐라고?”만 반복하고는 이내 잠이 든다.

숱한 명절을 엄마와 함께 보냈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 없는 명절은 이제 겨우 다섯 해 째. 내가 스무살이 된 후로는 엄마의 계속된 병원생활로 인해 추석이나 설날에 친척들하고만 지냈던 적이 꽤 있었다. 다행히 조부모와 삼촌가족과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 명절이 쓸쓸하진 않았다. 하지만 엄마 없는 추석과 설날이 자주 있긴했어도 익숙해지진 않았다. 입안에 가시가 돋힌 듯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 복 없게 먹는다는 소릴 꽤 들었었다.

명절에 병원에 입원해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옆에선 했던 말을 반복하는 어린 내 또래의 여자아이, 치매로 엄마에게 선생님이라 부른다는 할머니, 무미건조한 얼굴로 제지만 가하는 정신병동의 보호사들과 병원에서 맞는 명절은 어떨까.

아직 자식을 낳지도 않았지만 스무살, 스물 한 살의 나는 핏줄은 참 대단하다고 일찍이 생각했다. 자식인 내가 엄마 생각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데 부모가 되면 오죽 할까, 핏줄이란 참 대단하다고, 지긋지긋하지만 참 끈질긴거라고 생각했었다.

내일은 추석이다. 많은 집들이 그렇듯 추석 당일은 시댁에 가고 그 다음날은 친정에 간다. 친정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친정. 엄마는 없고 외삼촌과 외숙모가 있는 곳. 그리고 나와 같이 자란 사촌 언니들이 명절 다음 날 오는 곳. 엄마를 낳은 할머니가 가까운 요양원에 있는 곳. 역시나 그곳에도 엄마는 없다.

엄마는 지금, 이 땅에서의 그 어떤 순간들보다 편히 편히 쉬고 있을텐데 자꾸만 엄마를 향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저린다. 병원에서 맞았을 명절, 엄마가 느꼈을 초라함, 외로움, 고독. 그런 감정들이 한데 모여 물결을 이루고 내게 몰려든다.

남편과 헤어지고 술에 의지해야했던 그 인생이, 딸 하나 기르면서도 맘을 다잡을 수 없던 그 인생이, 십년 가까이 되는 병원생활을 겪어낸 그 인생이 내 인생마냥 이입이 된다.

최선을 다했다고, 난 할 거 다 했다고, 그래서 후회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후회가 되고 자책이 된다. 내가 위로해준다고 위로되는 엄마의 삶이 아닌데도, 좀더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공감해주지 못했던 것이 속이 상한다.

사실은 엄마가 그렇게 한순간에 갈지도 몰랐고 그건 생각도 못 해본 일이라 너무 허망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더 슬퍼질까봐 맘껏 애도하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내 눈치를 보며 그렇게 슬픔을 꾸역꾸역 삼켰는데 이런 날이 올줄 조금은 예상했다. 날 고생시켰던 엄마, 그래서 그렇게 밉고 원망하던 엄마를 가여워하는 것이 내 눈치가 보여 회피하고 덮어두다가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애들 준비시키고 시댁에 가느라 할일이 많은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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