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몸,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

by 한시영

옷을 벗고 샤워부스에 들어갔다. 물을 틀기 전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가슴을 따라서 배와 다리, 발까지 시선에 들어온다. 가슴은 아래를 향해 쳐져있고 배꼽 아래는 열개도 넘는 흰 튼살이 지그재그로 뻗어있다. 회음부 바로 위엔 붉고 통통하게 솟은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두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내게 남긴 흔적이다. 잠시 머문 것 치곤 흔적이 깊게도 남았다.

아이가 뱃속에 자리잡자 몸의 모양이 바뀌기 시작했다. 볼록하고 단단하게 나온 아랫배를 시작으로 곧 윗배가 나왔고 가슴과 엉덩이도 함께 커졌다. 임신 5개월까지만 해도 기존에 입던 옷들이 어느정도 맞았는데 6개월차가 되자 단추가 잠기지 않았고 지퍼도 올라가지 않았다. 억지로 올릴 수는 있었으나 그러면 배가 쪼여 뱃속 아이가 신경쓰였다.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입었던 브래지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고 와이어는 몸을 옥죄는 철사처럼 느껴졌다. 급한대로 팬티 옆 부분을 가위로 오려서 입었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 창에 ‘임부복’ 이란 단어를 검색해서 바지와 티셔츠, 레깅스, 속옷 몇개를 샀다. 몇일 뒤 배송된 임부 바지는 배 부분의 넓은 천이 볼록 나온 배를 감싸서 더 이상 배가 답답하지 않았다. 임부 상의는 기존 티셔츠들보다 기장이 길어서 배를 충분히 덮고도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임신을 하면 아기 신발이나 배넷저고리, 젖병처럼 출산용품만 준비하면 될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변해가는 몸에 맞춰 당장 입을 새옷부터 필요했다.

임신 후기가 되자 가슴에선 유즙이 나오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거나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면서 가슴이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면 젖꼭지엔 하얀 액체가 동그랗게 맺혔다. 침이나 땀이 아닌 다른 종류의 체액. 나의 몸은 벌써 나오지도 않은 아이의 젖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 맞을 준비를 하는 몸이 신비롭기도 했지만 마치 평소에 전혀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걸친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신체의 변화로 찾아온 번거로움과 당혹감도 적지 않았다. 뱃속에서 3키로까지 커진 아이로 인해 방광이 눌려 새벽에도 두 세번씩 화장실을 가야했고 위와 장 역시 자궁에 눌려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나온 배나 커진 가슴같이 밖으로 보이는 외형만큼이나 몸 속 장기의 위치, 호르몬을 비롯한 모든 생체 리듬이 바뀌어갔다.

9개월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몸밖으로 나왔어도 출산 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늘어난 자궁과 그곳을 감싸던 근막을 찢어 아일 꺼내는 제왕절개를 해서인지 배는 더디게만 들어갔다. 아이를 낳고 임부복에선 해방이 되었지만 수유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티셔츠의 경우 젖을 먹이기 위해선 옷을 배부터 들어올리느라 불편했다. 무엇보다 등과 배가 시려웠고 누구라도 있을 땐 수유하는 것 자체가 곤란했다. 이와 다르게 수유복은 가슴 아래에 지퍼가 있거나 옆에 트임이 있어서 아이 젖을 물리기에 수월했다. 수유에 최적화된 이 옷을 아일 낳고부터 젖을 끊기까지 일년이 넘게 입었다.

아이들은 품안에서 젖을 먹다가도 괜히 젖꼭지를 물고 늘어졌다. 그럴 때면 가슴은 모짜렐라 치즈 마냥 쭉쭉 늘어났다. 수유 초기에는 팽팽한 고무줄처럼 탄성이 있어 아이가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던 가슴은 시간이 지나자 아이가 당기는 대로 늘어지기만 했다. 젖샘에서 만든 젖을 젖꼭지까지 나르는 길게 뻗은 유선이 늘어난 탓인지 단유 후의 가슴은 물에 불은 손가락 지문처럼 주름이 자글자글 져있었다.

팬티 라인 아래로 길쭉하게 자리잡은 수술 자국. 모유수유 이후 본인의 소임을 다하고 장렬히 전사한듯 쪼그라든 유방. 여전히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배꼽까지. 어차피 나이가 들면 쳐질 가슴이고 나올 배였어도 임신과 출산으로 앞당겨진 신체의 변화가 여성성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겪기 전에 이야기라도 많이 들었다면 좀 나았을까. 아일 나만 낳은 것도 아닌데 이런 이야긴 쉽게 접하지 못했다. 포털 뉴스에서도 출산 후 복귀한 여자 연예인에 대해선 ‘전과 같은 늘씬한 몸매로 돌아온 ㅇㅇㅇ’ 라는 헤드라인을 붙인 기사가 대다수였다. 임신과 출산이 고스란히 새겨진 나의 몸이 달갑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몸에 대한 단순한 낯선 느낌을 넘어서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이 변하는 몸보다 변하지 않는 몸을 반기는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며칠 전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달라진 몸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잠시 뒤 ‘가려운 곳을 긁어준 언니의 글’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길 해주지 않는거지, 배가 불러오는데 벌써부터 겁난다.’ ‘50일 된 아일 안고 있는 아내랑 같이 읽었어. 엄청 고개 끄덕이며 보더라.’ ‘난 아일 빨리 가질 계획인데 여자친구는 고민이 많나봐. 글을 보니 좀 이해가 가네.’ 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변하지 않는 몸 말고도 변하는 몸, 늘어지고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몸에 대한 이야길 듣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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