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수술대 위를 기억하며 [1]

by 한시영

차가운 수술대 위를 기억하며 [1]

첫 아이는 뱃속에서 횡아로 자리를 잡았다. 역아도 아닌 옆으로 누운 횡아. 그렇게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고 둘째 역시 선택권 없이 수술이 결정됐다. 수정란이 생기고 38주 2일이 지난날, 아이를 꺼내기로 했다. 수술 전날부터 시작된 금식으로 인해 몸과 마음 모두 지칠 법도 했지만 어쩐지 감각은 더 선명했다. 뱃속 아이의 얼굴을 곧 본다는 기대감과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벅차오름을 느끼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분명 애는 둘이 만들었는데. 이 아이는 조부모와 친척들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일 텐데 이 아이의 탄생을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해내야 하는 사실이 얄궂게 느껴졌다. 수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지금 내가 맞닥뜨린 불안감과 두려움이 나만의 몫이라는 압박감은 병원 침대의 빳빳한 시트에 손끝이 스치는 감각까지 깨웠다.

수술 당일 아침, 항생제 부작용 검사를 했다. 반응 검사를 위해선 긴 주사 바늘이 피를 내지 않고 살가죽만 스치고 들어가야 한다. 집중하느라 눈을 잔뜩 찌푸린 간호사는 팔뚝 피부에 포를 뜨다시피 바늘을 넣은 후 미안한 표정으로 잘 참으셨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잠시 뒤에는 회음부 면도를 하고 소변줄을 꼽았다. 팔뚝을 바늘로 포를 뜨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면도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 쓱쓱 하고 지나간 정도. 다만 소변줄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간호사는 힘을 자꾸 풀어야 한다는데 나는 힘을 빼지 못했고, 그럴 때면 소변줄이 다시 떨어져 나왔다. 심호흡 몇 번 하고 눈을 감은 채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요도에 관이 삽입됐다. 직후 느껴지는 이물감은 참기가 힘들었지만 수술 전 필수 과정이라고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수술 준비를 거치다 보니 이제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찔리고, 털이 깎이고, 의료기구들이 몸에 붙어있는 상태. 몸뚱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상태.

수술을 기다리는 내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압박했다. 수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걱정과 수술이 잘 끝났어도 마취가 풀리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고통이 시작되리란 걸 첫째 출산을 통해서 알기 때문일까. 차라리 얼른 수술대에 올라가서 두려움을 현실로 대면하게 되길 원했으나 막상 ‘한국희 산모님,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웠지만 진심이었다. 애를 평생 배에 넣고 살 수도 없고 며칠 미룬다고 덜 아픈 것도 아닐 텐데.

이미 몸에 이것저것 매달아 있는 상태라 일어서지 못하고 눕혀진 상태로 이동식 침대에 옮겨졌다. 바퀴가 달렸으나 복도 중간중간의 턱을 넘을 때마다 덜컹 거리는 침대였다. 그럴 때마다 소변줄이 빠지는 것은 아닌지, 혹시라도 또 소변줄 관 삽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이동 중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작은 체구에 내 침대를 따라오느라 바쁜 시어머니의 왼쪽 뺨이 보였고 위를 올려다보면 새하얀 형광등이 눈에 내리쬐었다.

이젠 수술방에 들어갈 차례. 남편과 외숙모, 시어머니는 듣지 못했겠지만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만 두고 가지 마세요. 저 무서워요.’ 애 낳으러 가는 산모가 할 말은 아니란 생각을 했던 나의 이성은 그 외침을 입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목소리를 단속했다. 그렇게 들어온 수술방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마치 서대문 형무소처럼 중앙을 필두로 개미굴처럼 여러 6-7개 되는 수술방들이 뻗어있었고 수많은 의료진이 초록색 가운을 입은 채로 하나같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녔다.

나의 수술방은 8호라고 했다. 의료진은 입고 있던 환자복을 벗기고 내 알몸 위에 초록색 천을 덮어주었다. 곧장 하반신 마취에 들어갔다. 옆을 보고 무릎을 굽혀 누웠다. 내 자세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마취과 의사는 무릎을 더 굽히라고 했다. 잠시 뒤 굴곡진 새우등 아래로 뜨거운 액체가 몸 안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고 마취가 잘 되었는지 내 다리를 만지며 ‘느낌 없으시죠’ 하고 물은 후 수술이 시작됐다.

출산 전 혈액검사에서 빈혈 수치가 좋지 않다고 했었다. 막달 내내 두 배 용량의 철분제를 먹었는데도 빈혈 수치는 오히려 나빠졌다. 그래서인지 검붉은 혈액이 담긴 주머니 4개가 내 오른편에 놓였다. 맨살이 그대로 나온 팔뚝의 살갗에는 호흡과 맥박을 체크하기 위한 기계들을 달렸다.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던 차가운 금속들이 몸에 닿자 어느새 내 체온이 전해져 금속이 닿아있는 피부 감각이 한층 편해졌다.

수술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자 왼쪽 문을 열고 주치의가 들어왔다. 정기검진을 하느라 한 달에 많게는 세네 번 보았던 익숙한 얼굴의 주치의. 언제나 그랬듯 차분한 목소리로 ‘이제 아이를 볼 시간이네요, 어떠세요? 떨리시죠? 시작합니다. 괜찮을 거예요.’

짙은 초록색 천으로 가려진 내 하반신을 직접 볼 수는 없었으나 ‘시작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아마도 메스로 피부를 가른 듯했다. 보이진 않아도 수술 전날 유튜브로 보았던 제왕절개 수술 장면을 상상하며 현재 어떤 처치 중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지금은 근막을 찢고 있나 봐. 아닌가, 피부는 다 찢어졌나. 언제 자궁을 찢게 될까.’ 10분 남짓 지났을까 얼마 가지 않아 “메스, 솜” 등의 명령어만 말하던 의사의 입에서 “이제 아이 나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의료진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내 하반신을 둘러싸고 있는 네댓 명의 인원들이 내 다리를 잡고서 이리저리 흔들더니 무언가를 쑤욱- 빼냈다. 덜컹.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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