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고통은 없는거야
저 멀리서 벌건 알몸의 아이가 보였다. 갓 태어난 아이의 살색은 핏빛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 또렷이 보이진 않았지만 의료진 한 명이 아이 입에 깔때기를 넣어 이물질을 뺀 후 천으로 아이를 휘휘 감아 내게로 데려왔다. 방금까지 내 자궁 안에 있던 아이였다. 내 주먹만 한 작은 얼굴로 쓸 수 있는 인상은 다 쓰며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로. 허옇고 누런 찌꺼기를 눈썹과 머리카락, 온몸에 가득 묻히고 나타났다. 곧장 눈물이 눈꼬리로 삐져나와 머리카락을 적셨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안도감때문이었을까.아직도 그때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새 생명을 바로 마주한다는 벅차오름. 생각보다 많이 작았던 아이에 대한 미안함, 아직 끝나지 않은 수술에 대한 남은 두려움. 슬프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2.8킬로의 아이는 건강하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신생아실로 옮겨졌고 후처치가 시작됐다.
수술 후반부터 시작된 미세한 몸의 떨림을 감지한 의료진은 수혈을 시작했다. 팔에 꽂힌 바늘로부터 검붉은 피가 몸으로 들어올 때마다 팔뚝이 뜨거웠다. 후처치를 할 동안 수면마취를 할 것인지 물었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잠에 든 채 긴장감을 잊고도 싶었지만 잠에 들면 깨어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봉합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갈라진 자궁 사이로 혈관이 봉합되고 근막과 피부가 꿰매지는 동안 내 다리 밑에서 의사와 그 옆의 인턴, 간호사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악 하나 틀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평소 듣던 지브리 스튜디오 연주곡 생각이 간절했다. 내게는 인생이 걸려있는 듯한 이 수술 시간에 의료진들이 나누는 이야길 들으며 그들에겐 이것이 일상이구나 싶었다. ‘나도 곧 저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끝나자 오한이 찾아왔다. 몸속 깊은 곳에서 전해져 오는 한기였다. 한동안 열려있던 자궁으로 수술실의 찬 공기가 들어가서였을까. 몸은 뻣뻣하게 굳었고 쉴 새 없이 떨렸다.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윗니와 아랫니의 움직임으로 인해 턱 안쪽에선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간호사가 수술방 중앙에 위치한 처치실에서 따뜻한 바람이 부는 온풍기를 이불 안에 넣어주었다. 수술실 밖으로 옮겨져, 나를 기다리던 남편과 시어머니와 외숙모를 보았다. ‘나 너무 힘들었어요. 혼자 저기 들어가서 맨 정신으로 수술받았는데, 아이는 너무 예쁜데, 너무 무서웠어요. 지금은 너무 추워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온몸으로 몰아닥치는 오한에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날밤, 남편은 다섯 살 첫째 아이를 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간병인의 간호를 받았다. 수혈 때문인지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새벽부터 마취가 풀리기 시작해서 오는 복부의 고통도 가세했다. 간병인분이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며 바꿔줬는데 “너무 아파. 열이 나.”라고만 중얼거린 기억이 난다. 배에서 마치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는 통증을 참기 힘들 땐 링거 줄에 달린 진통제를 내가 직접 눌러 투약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듣지 않을 만큼 아프면 간호실에 이야기해 진통제 주사를 엉덩이에 따로 맞았다.
출산은 험한 일이었다. 새 생명이 탄생되는 거룩한 일이기도 했으나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마주할 때면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아일 낳자마자 차오른 젖을 보며 생명의 섭리에 감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출산은 내게 고통이었고 두려움이었고 불확실성에 대한 싸움이었다.
아이를 위해 엄마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 여겼기에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도, 느낌도, 서러움도, 감당 안 되는 그 마음들 모두가 잊혀질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기억한다’로 시작했던 글에서 한 문장을 쓰자마자 우르르 쏟아져버린 분만실 수술대 위에서의 기억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출산을 직접 겪는 산모의 이야기가 아닌 출산 자체가 가지는 고귀한 이미지에 더 익숙한 사람들과 작은 생명체의 탄생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실 앞에서 압도되어 나의 고통을 묻어뒀다.
수술한 지 2년이 돼서야 그 기억을 꺼낸다. 내 몸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수술을 떠올리고 실은 두려워서 수술 당일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을 글로 풀어본다. 이제 좀 편해졌냐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때 내게 필요했던 말들. 출산을 축하한다는 축하 메시지가 아닌 “많이 아팠지, 얼마나 아팠어, 고생했어”라는 말들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