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도시 노동자

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돌볼 수 있을까

by 한시영

어딘가 불편해서 눈을 떠보니 옆에서 자는 첫째 아이의 다리가 내 가슴 위에 올라와있다. 그렇게 눈을 뜨니 6시 반이다. 일어나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한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그 다음 할 일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금방 잠에서 깬 머리라도 쉴 새가 없다. 아이들이 중간에 깨지 않도록 방문을 꽉 닫고 머리를 말린 후 화장을 하면 회사 갈 준비가 끝난다. 아이들 먹일 사과를 깎고 떡을 데워놓는다. 그리고 전날 쇼파에 꺼내놓은 아이들 옷이 오늘 날씨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에서 최근 20분전에 올라온 날씨 예보를 본다. ‘어제 보다 8도 가량 낮아진 날씨’라는 캐스터의 말에 서둘러 아이들 옷을 기모가 들어간 걸로 바꾼다.

7시 반쯤 아이들이 하나 둘씩 깨서 낑낑거리며 거실로 나온다. 입고 잔 수면조끼를 입고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 앞으로 사과를 담은 접시를 앞에 놓아준다. 반쯤 감긴 눈을 한 채 작디 작은 손으로 사과를 가져가 입에다 넣으며 “아빠?” 한다. “아빠는 운동하고 회사에 갔지이~” 대답해줬지만 “아빠? 아빠?” 는 멈추지 않는다. 남편은 요즘 높아진 간수치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6시쯤 나가 한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한다.

8시다. 둘째를 번쩍 들어 세면대로 간다. 19개월 10키로. 이제 제법 묵직하다. 밤새 기저귀에 덮여있던 엉덩이가 답답할까봐 물로 씻겨 부채질을 몇 번 하고 기저귀를 채운다. 그러면 시원한지 앞니가 보이게 씨익 웃어준다. 아일 씻기다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 배 부분이 동그랗게 젖어서 어두운 자국이 남았다. 여섯살 첫째는 엄마가 동생을 돌보는 사이에 자기가 알아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세수도 하고 옷도 입는다. 월요일은 주말에 세탁한 낮잠이불을 가지고 가야한다. 이불 가방과 어린이집 가방. 두명 가방만 4개. 남편이 새벽에 나가면서 차 조수석에 가방을 갖다놓는다.

8시 40분, 집을 나설 때다. 신발 신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아일 달래주고 짝짝이로 신은 신발을 다시 신겨주면 어느새 5분이 훌쩍 가있다. 겨우 차까지 도착해서 아이들을 태운다. 차가워진 공기와 함께 두꺼워진 옷 때문에 카시트 벨트가 잘 잠기지 않아 애를 먹는다.

아이 둘을 태우고 회사로 출발한다. 회사 가는 길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안 가정어린이집에 둘째를 맡긴다. 아직 두 살인 둘째는 내년 3월이 되야 언니와 함께 직장어린이집에 갈 수 있다. 할 수 없이 그 전까진 따로 기관에 다녀야 한다. 출근 전이지만 이미 아이들이 깬 7시부터 일을 시작한 기분. 회사 도착을 5분 남기고 첫째가 늘 내뱉는 레파토리. “엄마 휴가 좀 내~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아이를 어르고 달래 4층에 있는 어린이집 앞까지 왔다. 엄마랑 잘 헤어지는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아직도 엄마와의 이별이 힘들다. 사무실로 가려는 엄말 붙잡고서 떨어질 생각이 없다. 그 모습을 본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선생님이 안아줄게. 이리와" 하며 아이를 떼어간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하면 드디어 출근이다.

9시 30분 출근, 3시 30분 퇴근.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 중이다. 복직한 부서의 리더는 단축근무하는 만큼 보수도 적게 받으니 주눅들지 말라고 했다. 팀 내 구성원들에게도 육아하는 구성원의 근무 환경을 이해하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남들 다 앉아서 일하는 3시에 짐을 꾸려 나오는 건 늘 민망한 일이다. 오늘은 스마트 오피스를 구축한 지 3년된 우리 회사를 보러 고객사가 견학을 온다고 한다. 명함을 넉넉히 10장 챙기고 사전에 회의실을 예약하고 고객사 직원들 방문 예약을 한다. 고객사가 오기 전 1층에서 기다렸다가 사무실 투어를 하고 회의를 하는데 어느새 3시 반이다. 같이 회의에 참석한 동료와 고객사에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나와 짐을 꾸려서 아이를 데리러 간다. 퇴근과 동시에 시작되는 돌봄노동. 업무도 미팅도 중간에 하다 말고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 길은 몸도 마음도 무겁다. 첫째를 태우고 유턴을 해서 둘째를 태운다. 또 유턴을 해서 몇 KM를 가면 집이다. 퇴근은 했지만 집으로 또 출근한 기분. 아침에 정신없이 헤쳐 놓은 집을 치우며 아이들의 손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집에 도착하면 밥부터 앉힌다. 쌀을 씻는데 둘째가 떨어지질 않는다. 안아달라고 뻗는 손을 외면할 수가 없어 잠시라도 가지고 놀라고 쌀 몇 줌 담은 통을 주니 신나게 쌀을 여기저기 튀긴다. 밥을 앉힌 다음에는 흩뿌려진 쌀을 치워야하지만 그래도 밥은 했으니 다행이다. 몇 분이 지나자 밥이 됐다는 소리가 들리고 밥을 한번 저어준다. 첫째가 먹고 싶다던 토마토 계란볶음을 했다. 아이들 입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가위로 잘랐다. 같이 저녁을 먹을 수도 있지만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는 25분이 나의 두 손이 자유로운 유일한 시간이다. 이 때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마무리 하지 못한 청소를 한다. 저녁 7시가 되면 도어락 버튼 소리와 함께 남편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신나서 엉덩이 춤까지 불사하며 씰룩씰룩댄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최근 6년간 쉴틈없이 달려왔다. 사정상 시댁과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대체 양육자도 없었다. 아일 기르는 일은 철저히 우리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몇년, 서른 여섯살 남편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술담배도 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그이지만 간 수치와 혈압이 올라갔다. 남편은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의 허기를 차 안에서 과자로 달랬다. 내가 회식이나 야근이라도 있는 날엔 아이들을 보기 위해 일이 있어도 반차를 썼다. 남은 회사 일은 아이들이 모두다 잠든 밤에 시작됐으며 그 시간을 에너지 음료나 커피와 함께 했다. 그의 건강은 아마 이런 시간들이 축적된 결과인듯 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육아 동지의 건강이 나빠지니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다. 만일 남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이들에 대한 모든 책무와 가정 경제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 그려진다. 최근 우리 부부는 서로의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운동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남편은 아침, 나는 저녁. 남편이 저녁밥을 먹는 동안 나는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 앞 필라테스 학원으로 출발한다. 지금은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한 집합금지로 인해 가지 못하고 있지만.

9시가 넘어 집에 오면 아이들은 자고 있다. 남편도 녹초, 나도 녹초. 이야기를 나눌 힘도 없다. “오빠 진짜 힘들다 그치.” 하면 “그러게, 진짜 극한이다. 그래도 좀만 버티자.” 라는 남편의 대답. 버티는 게 결론이다.

도시노동자로서 아이 둘을 낳은 건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둘 키워서 나중에 크면 엄마 아빠 찾지 않고 잘 논다고 하지만 그 나중을 기다리기에 지금이 너무 가혹하다. 눈 뜨고 눈을 감기 전까지 쉴새 없이 할 일들로 채워진 나의 머리엔 두통이 비집고 들어왔다.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려니 너무 먼 이야기같고 지금을 버텨내는 것도 쉽지 않아 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말처럼 이 시기가 지나면 아쉽게 느껴질까.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다.

(재택근무 시작 전, 복직 후 얼마 안되어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로 쓴 노동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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