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글자 끄적이다 만 노트를 회사에 챙겨왔다. 점심시간에 주욱 훑어보니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나에 대한 격려, 분석, 다짐이 빼곡하다. 코로나로 인한 가정보육으로 육아에 삶이 치여 쏟아냈던 한탄들도. 그런데 언제나 끝맺음이 없다. 쓰다가 회사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가 깨고. 빨래가 다 됐다고 세탁기가 울리고. 밥이 다 됐다고 쿠쿠가 나를 부르고. 이렇게 쓰다만 일기.
2020년 9월 15일 화요일
작은 것 하나에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인정하기. 나는 왜 그런거냐고 채근하지 않기. 나 자신을 격려하고 받아들이기. 나 자신을 바꾸고 교화하려는 대상으로 삼지 않기. 내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 무시하지 않기. 나에게 집중한다고 해서남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넘길 수 있는 것은 넘기기. 잘 안될 때는 이해하기. 넘기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넘기지 않기. 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때는 과감히 끊어버리기.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새벽에 요가를 하고 글을 쓴다. 어느 자세에서 어느 동작이 어느 부위에 자극적인지. 왼쪽은 되는데 오른쪽은 안되는 자세를 보면서 몸을 살핀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이 얼마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사랑받기 위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한 일들이 많았는지, 동기가 외부에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을 이루게 하지만 동시에 생각없이 달리게 하는 것.
아이의 짜증은 나에 대한 공격 이전에 풀리지 안는 감정의 표현이다. 여유를 갖자. 감정대 감정은 피하자. 좋은 엄마로 보이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내 아이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자.
나는 ‘이런 사람’ 좋은 사람. 좋은 엄마임을 암시하는 말, 글들이 너무 많다. 그 속에 숨겨진 의도. 내가 의도한, 보여지고 싶은 사람으로 읽히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가 나를 행복한 사람, 더 나은 사람으로 볼 때 거기에 내 행복이 있다고 믿는 마음. 내 행복을 다른 이의 판단에 맡기는 수동적 태도. 내가 날 얼마나 집중해서 어떻게 보는 지보다도 남들의 시선에 더 집중하는 모습
좋은 엄마라는 타이틀이 내게 얼마나 부담이 됐는지 내가 보이고 싶어하는, 나에 대한 정의는 내게 그대로 돌아와 족쇄가 된다.’ 난 이런 사람이니까, 난 이렇게 해야한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유동적인 존재다. 어쩔 수 없이 내 어린 시절, 타인이 주는 인정과 관심과 사랑이 내 행복의 근원이었다면 지금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어른이니까. 나는 유동적인 존재다. 그 누구도 나를 정의내릴 수 없고 나 조차도 그렇다. 다르 사람들도 역시. 강일, 솔, 현 역시 유동적인 존재임을 기억하자.
2020년 9월 21일 월요일
중략
오늘은 좋은 엄마까지 아니더라도 좀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특히 동생 생기고 혼날 일이 많은 첫째. 큰 소리 내는 일을 줄여야지, 좀더 기다려주어야지. 어쩌면 좋은 엄마. 너그러운 사람이 되려는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