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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Mar 31. 2021

욕망과 타락 -2-

27 취준생의 일상 수필

벨레로폰의 몰락


 그런데 문제는 이후 벨레로폰이 교만해진다는 점이다. 괴수 키메라도 퇴치하고, 각종 적들도 물리치며 무용담을 한껏 쌓아 올리고 영웅 대접도 받았겠다, 그리스 신들의 가호도 받았겠다, 두려울 게 없는 그였다. 왕위에 오른 그는 신들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교만 감에 휩싸이게 된다. 신들이 사는 곳이 어딘가. 바로 하늘 위 올림푸스. 그래서 그는 하늘을 나는 말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푸스까지 날아가기로 결심한다. 주신 제우스는 벨레로폰의 선을 넘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았다. 결국 제우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제우스는 등에를 보내 페가수스를 물게 한다. 페가수스가 따끔함에 몸을 흔드니 천하의 벨레로폰이라고 별 수 있나. 적토마를 타던 여포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벨레로폰은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게 되었는데, 구전에 따라 사망했거나 불구가 되어 살았다고 한다. 무엇이 되는 결국 비참한 말로를 살게 된다.


 벨레로폰 역시 인간의 신분으로 신의 위치에 오르려다 추락한 것이다. 인공 날개로 더 높은 하늘로 향하려다 추락한 이카로스의 이야기와 다소 유사하다. 벨레로폰의 경우는 이미 신의 가호를 받아 영웅이 되었음에도 하늘의 자리를 넘보았다. 벨레로폰은 본인의 오만함으로 인해 영웅의 자격을 잃고 신이 되고자 하여 타락하였고, 결국 신의 권좌를 넘보게 되었다. 그가 신의 위치에 가려던 수단은 하늘을 나는 말, 페가수스였다. 그런데 페가수스가 자연에 의해 태어난 진화의 산물인가? 아니다. 페가수스는 결국 신의 조력에 의한 것이었고, 페가수스에 의존하는 한 벨레로폰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신의 자손이지만 인간이었던 헤라클레스가 스스로의 힘으로 신의 위치에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탐욕과 타락

 


 이와는 달리 탐욕으로 인해 타락하게 된 경우도 있다. 탐욕의 경우 본인의 탐욕으로 인해 타락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저주가 작용하는 신화도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북유럽 신화의 난쟁이 안드바리의 반지다. 난쟁이 안드바리는 온갖 보물을 모으고, 재물을 모으는 반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반지가 있으면, 삼대가 폭삭 망한 거지라도 순식간에 재벌 뺨치는 재물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북유럽 신 로키에 의해서 안드바리는 그간 모은 황금과 보물을 빼앗기게 된다. 다 가져가도 좋으나 반지만은 남겨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로키는 얄짤없이 반지마저 가져간다. 이에 분노한 안드바리는 그 반지를 얻게 된 자는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저주한다. 로키는 왜 잘 살고 있는 안드바리의 황금과 보물을 빼앗느냐. 그건 원래 인성이 파탄 났기보다는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 그와 오딘이 인간세상을 구경하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죽은 이의 아비가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무덤을 황금으로 전부 덮을 만큼 금은보화를 요구한다. 결국 아비는 보물을 얻어 아들의 무덤을 황금으로 덮게 된다. 그런데 딱 반지 하나만큼의 공간이 부족했다. 반지만은 주고 싶지 않았던 로키는 결국 반지를 주어야만 했다. 이렇게 아비는 반지 역시 얻게 되었다. 이후 저주가 발동한 것인지 황금과 반지에 눈이 먼 아비와 그의 형제들은 서로를 죽이며 다투었다. 어쩌면 저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가족 간에도 돈 들고 튀고, 사기 치는 경우가 현대에도 허다한데 신화적 시대야 오죽했겠는가. 최후로 살아남은 아들 파프니르는 용으로 변하여 보물을 독점한다. 많은 이들이 이 보물과 황금을 탐내 파프니르에게 도전했으나 모두 몰살당하였다. 그리고 파프니르는 결국 영웅 시구르드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욕망에 눈이 멀어 타락하게 된 파프니르. 악룡으로 변하면서까지 황금을 지키려 했으나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서 라캄, 보물을 지키는 파프니르


 이는 탐욕에 대한 경계의식에서 비롯된 타락 모티브로 볼 수 있다. 재물을 탐하느라 형제와 아버지까지 살해한 그는 일반적인 욕망의 수준에서 벗어난 타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현대 시대에서도 돈 때문에 별별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내재된 탐욕은 결국 타락으로 향하는 잠재된 방아쇠일지도 모른다. 현대라면 모르겠지만 신화에서 이러한 타락의 결과물은 비참한 최후를 동반한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계 시 되었고, 한국에서도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 잘 나타나는 주된 권선징악 이야기다. 지나친 탐욕으로 인륜까지 무시할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경계의식이 반영된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타락한 약골 신, 로키



 같은 북유럽 신화에서 타락한 신으로는 로키를 뽑을 수 있다. 파프니르 신화에 나오는 신과 동일한 신으로 장난의 신으로 불리는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악동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블의 토르 영화로 유명해진 로키는 영화처럼 신화 내에서도 장난의 신이다. 여러 장난으로 가끔은 신들은 곤란에 처하게 하기도 하지만, 여러 보물을 신들에게 안겨 주기도 했다. 이런 그가 타락하여 북유럽 신들을 전쟁으로 몰아넣는데 그 전쟁이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이 멸망하는 ‘라그나로크’다. 



 로키에게는 자식이 셋 있었는데 모두 흉측한 괴물들이었다. 거대한 늑대, 거대한 뱀 그리고 반인 반시체. 그의 자식들은 후에 신들에게 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오딘은 로키의 세 자식을 모두 신계에서 추방하여 내던진다. 이후 복수심을 품게 된 로키는 라그나로크 때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배신하고 자식들과 함께 적들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러나 로키 역시 라그나로크 전투 중 파수꾼 신 헤임달과 함께 사망하게 된다.


복수 스토리와 타락


 이는 일종의 복수 모티브와 결합된 타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복수와 관련된 타락 스토리는 한국 신화에서도 등장한다. 서천꽃밭이라는 신계의 꽃밭이 있는데 이를 관리하는 신이 사라도령이다. 사라도령은 본디 인간이었으나 옥황상제의 부름으로 꽃밭을 관리하라는 천명을 듣게 된다. 고민 끝에 그는 아내와 함께 서천꽃밭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가는 도중 머물게 된 장소에서 아내 원강아미는 탈이 나서 쉬게 되고, 사라도령은 천명을 수행하기 위해 홀로 가게 된다. 원강아미는 머물던 집주인은 탐욕스러운 자였고 미모를 흠모한 주인은 혼인을 요구한다. 끝까지 거절하다 노비로 전락했고, 결국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라도령은 한번 서천꽃밭의 관리가 되고 난 후에는 인세로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후 이승을 멸망시키기 위해 싸움 싸울 꽃, 멸망 악심 꽃 등을 만들며 복수를 다짐한다. 훗날 사라도령은 원강아미가 노예로 있을 적 탈출시킨 아들과 재회한다. 그리고 뼈를 살리고, 살을 살리는 꽃으로 원강아미를 되살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만약에 그 과정에서 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사라도령은 인간을 멸망시키려 하는 악인이 될 뻔하였다.


사라도령


 이와 같이 타락 모티브는 보통 복수, 배신 혹은 유혹과 쉽게 연결되기도 한다. 평범하거나 선량한 인물이 악인이 되어가는 타락 과정은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참으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40을 불혹의 나이라 하지만, 어디 쉬운가 불혹이. 욕망에 이끌려 유혹에 넘어갔다고 하여도, 본래 인물이 가진 욕망이 타락의 기본 전제가 된다. 인물이 타락하게 되면,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타락은 비참한 결말과 한 쌍이었다. 욕망을 주체 못 하거나 유혹에 넘어가서 배신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이 되면, 결국은 징벌을 받아야 할 존재가 될 뿐이었다. 이는 현세 기득권들의 율법이나 관습적인 도덕관을 더 공고히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였다.


타락과 현대 미디어 콘텐츠

 

 타락 모티브는 현대 매체에서도 악인을 탄생시키거나 스토리에 반전을 주는 주요 요소로 등장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 등장하는 하비 덴트라는 인물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비 덴트는 범죄가 들끓는 도시 고담의 신임검사로 범죄를 척결하려는 마음을 가진 강건한 검사였다. 하지만 범죄자 조커의 계략에 의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조커의 유혹에 빠져 투페이스라는 악인으로 타락하고 만다. 결국 악인이 된 하비 덴트는 영웅 배트맨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또한, 블리자드 사의 게임 <워크래프트>에는 아서스라는 왕자가 등장한다. 블리자드는 타락이라는 장치를 게임 스토리텔링에서 주로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워크래프트의 아서스는 특히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라는 대사로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한 인물이다. 촉망받는 성기사로 유명했던 왕자였지만 역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강경책으로 한 도시의 주민들을 학살했고, 이후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더 큰 힘을 욕망하다 결국 저주받은 검에 의해 타락하게 된다. 이후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며 위의 대사를 말한다. 그렇게 그는 워크래프트 게임 스토리상 가장 유명한 악당이 된다.


 

 위의 파프니르의 반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반지의 제왕 역시 타락 모티브를 사용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절대반지를 끼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한 평생 반지만을 탐하게 된다. 평범한 호빗이었으나 반지의 탐욕에 의해 친우를 죽이고 괴물이 된 골룸이 대표적인 타락 캐릭터이다. 영화 종반에는 선한 주인공이었던 프로도마저도 반지에 눈이 멀어 반지를 차지하려 한다. 




 타락은 신화에 있어서 악인을 만들어내고 처단하는 스토리의 장치가 된다. 그리고 결말은 모두 비참하다. 욕망에 끌리는 대로 행하는 것을 경계하는 공동체의 의지가 신화 속에는 내재되어 있다. 욕망은 우리를 이끌어주나 절제되지 않는 욕망은 결국 파멸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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