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홍 May 16. 2018

패션에 민감한 엄마와 산다는 것

엄마보다 옷 못입는 딸의 고군분투기


 그렇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옷을 잘입는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반항도 해보았으나 이젠 인정한다.


범상치 않은 포스의 젊은 시절 엄마


 너 정말 그러고 나갈거니?


 엄마에게 아침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오늘 내가 입은 스타일 중 어느 한 구석이 잘어우러지지않는다는 뜻이다. 세 자식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엄마에 비해 감각이 떨어지지만(그래도 막내가 제일 낫다) 나는 주로 겹쳐입는 옷의 소재가 안어울린다거나 색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엄마의 범상치 않은 면모는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어날 적부터 몸이 약했던 내가 6살, 늦게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까지 나는 내 옷이 들어있던 서랍장과 장롱을 구경해본 적이 없었다(!) 분명히 내 방안에 아이보리색 목재의 달 그림이 그려진 장롱과 서랍은 기억이 나는데 내가 그 옷 서랍을 열어본 기억이 없다. 다만 기억이 나는 건 아침에 씻고 준비하고 나오면 엄마가 그날 입을 옷과 악세사리들을 거실 바닥에 꺼내놓고 "지홍아~ 오늘은 이거 입자" 했던 것이다.

 어떻게 애가 순순히 엄마가 하자는 대로 했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기에 나는 내가 옷을 골라 입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애초부터 내가 치마처럼 뛰어놀기 불편한 옷은 안입겠다고 하면 엄마가 다른 옷을 꺼내주었다.



나들이 자매 시밀러룩


뚜비 남매룩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남편과 자식들이 어디나가서 부족해보이거나 깔끔해보이지 않는 게 정말이지 싫었다고 한다. 게다가 가족외식이나 나들이, 여행 등 온가족이 출동하는 날에는 패밀리룩으로 아빠부터 막내까지 스타일을 통일시켜야 비로소 문밖에 나설 수 있었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에게 우리 가족의 스타일이란 자존심이었던 거다. 

 한때는 엄마의 그런 철저함이 힘들게 다가왔을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이니 엄마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을리도 만무하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보니 우리집이 유독 엄마에게만 옷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는걸 알게된 것이다. 특히 또래의 유행에 민감한 10대때는 사실 옷의 스타일이니 색감이니 뭐니해도 그냥 애들이 입는거 따라 입고 싶은데 엄마는 용납해주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맞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렸고 그래도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입고싶었을까


 하지만 10대가 괜히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6학년 때 나는 집을 나설 때는 엄마가 사준 옷을 입고 나가 아파트 계단에서 몰래 숨겨 갖고 나온 언니의 옷이나 용돈으로 산 옷을 갈아입기에 이른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한 덩치했던 몸으로 작디작은 언니의 면자켓을 훔쳐입다가 찢어버리는 바람에 들통났지만 이중생활은 꽤 오래갔다. 엄마만큼이나 무서웠던 언니한테 된통 혼나고..엄마한테 또 혼나고..이후로 난 다시는 옷을 훔쳐입지 않았지만 우리집에서 이 에피소드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엄마가 항상 내가 입는 옷마다 제재를 했던 건 아니다. 나름 패션에 주관이 생긴 고등학생 때 나는 톰보이 스타일에 빠져있었는데 엄마가 예쁘진 않아도 개성이라고 생각했는지 정말 과하다싶을때 빼곤 관여하지 않았다. (당시에 엄마는 나를 보곤 항상 '똥멋'이라 불렀다) 이때가 성인이 되기 전 내가 가장 주도적으로 옷을 입었던 시기에 속한다. 더군다나 나중엔 집안 사정으로 자취까지 하게 됐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당시에 집안 사정이 어려웠었는데 다른건 몰라도 이때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행복했다. (그래서 엄마가 싫어하는 옷만 골라입었나보다)

 이쯤되니 에세이를 가장한 엄마의 뒷담화같지만 사실 좋은점도 많다. 일단 엄마랑 옷을 같이 입을 수 있다는 점인데 엄마의 젊은 감각 덕분에 나는 언니보다도 엄마와 함께 입는 옷이 더 많다. 엄마가 만약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40-50대 스타일을 추구했다면 나는 절대 엄마와 옷을 같이 입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가 딸에게 옷에 대해 조언해준다는 건 사실 굉장한 메리트다. 어쩌다 가끔 중요한 자리나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 가장 믿음직한 스타일리스트가 되어준다. 그리고 가끔 아침에 뭐 입을까 고민될 때 엄마부르면 해결된다.


한혜연 안부럽다


어디서 샀어?


 옷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알거다. 오늘 내가 꽤 괜찮게 입었다는 사실을..불행중 다행인지, 다행중 불행인지 나는 살면서 이 말을 들은 거의 모든 날 아침에 엄마의 손을 거쳤다. 그러니 난 엄마보다 옷을 못입는다는 사실을 슬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그래서 나는 이제 쇼핑을 하거나 옷을 고를 때면 '엄마가 이걸 입은 내 모습을 봤다면' 이라는 상황을 가정한다. 옷을 입은 나를 본 엄마의 표정을 떠올리면 아무리 별론지 괜찮은지 정말 헷갈리는 옷도 웬만하면 답이 나온다. 세상에 쇼핑을 하면서 나만큼이나 엄마를 떠올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마도 없으리라.


여행가서도 엄마의 손을 거쳤다.


 옷에 대해서만큼은 오히려 성인이 되고나서 더욱 엄마를 믿고 따른다는 사실을 엄마도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외출 준비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내가 고민도 많아 가끔 옷장을 뒤지다 엄마, 하고 부르면 넌 어쩜 그러니, 타박하면서도 다 큰 자식의 옷을 골라주는 얼굴이 나쁘지 만은 않다. 때문에 나는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우리 엄마가 내 옷을 골라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 그런 엄마를 할머니가 돼도 귀찮게 할 참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 떠난다고 좋기만 할쏘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