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뮌헨을 떠나는 날 아침은 왠지모를 분주함과 설레임으로 떨렸다. 어제 저녁까지 독일에서 우리와 동거동락 했던 미국 차 포드는 일찌감치 렌트가 업소에 반납했고 이제부터 취리히까지는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두었던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뮌헨 버스터미널 ZOB는 유럽을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저마다의 목적지로 데려다 줄 버스를 기다리는 전세계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뮌헨 중앙역에서 서쪽으로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 버스터미널은 스위스, 체코, 이탈리아 등 유럽의 유명 도시들을 잇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버스를 기다리며 제잘거리는 한국말이 들려올 때 마다 마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 마져 들게 했다. 우리를 목적지 까지 데려다 줄 버스는 3시간 30분이 체 되지 않아 하이디의 고향 스위스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서둘러 우리의 발이 되어줄 렌트카를 픽업하고 스위스에서의 첫번째 숙소인 피아 아주머니 댁으로 달렸다. 아주머니의 집은 피츠나우 근처 산 중턱에 있었는데 우리는 가는 동안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 '척'
구글 네비게이션은 계속해서 외길 인 산꼭대기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고 산의 정상에 오를 수록 듬성듬성 보이던 집들은 그나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갈 곳이 없는 곳에 이르르자 운전석에 있는 나는 겁이나기 시작했다. 조수석과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일행을 포함하여 4명이 산 정상에서 후진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의 심장 소리는 밖같으로 울려퍼질 만큼 '쿵쿵' 거리고 있었지만 당장 운전을 바꾸어 줄 사람은 없었고, 나는 애써 침착한 '척'하려고 안간힘을 다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뒷좌석 일행들은 저음의 안정된 목소리로 그런 나의 마음을 진정시켰고 그 덕분에 우리는 안전하게 산 정상에서 중턱까지 후진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피아 아주머니 부부를 보자 나도 모를 울컥함이 몰려 왔다. 그 날 밤 스위스 얼음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의 집에서 꿈같던 첫날 밤이 지나갔다.
이른 아침 피아 아주머니의 집 밥을 먹기 위해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둘둘 말아 올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손수 만든 빵과 치즈, 향이 진한 허브차와 뒷마당 닭들이 낳은 달걀로 만든 스크럼블을 보자 나도 모를 탄성이 흘러 나온다. 12,000km를 달려 머나먼 타국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피아 아주머니의 정성스런 식탁으로 인해 지난 밤 얼어 버린 심장을 사르르 녹게 했다.
#배려
2021년 코로나19는 현재 우리와 with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지나간 여행들의 흐릿해 지는기억들의 조각들을 찾기 위해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했던 그 때 우리들의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며칠을 고생해서 포토북을 완성하고 앨범을 나누며 함께 했던 여행의 기억들을 나누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 정상에서 중턱까지 후진으로 내려올 때 모두 '척' 했다는 것을.... 나의 불안이 상대에게 전해질 까봐 모두들 애써 태연한 '척', 안정적인 '척'했다는 것을... 당시 함께 여행했던 선생님은 나에게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6년이 지나고서야 우리는 서로를 배려 했던 그 시간의 흔적을 함께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를 안정시키던 선생님의 목소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