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시텔레.... 모든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다
2016년 1월... 뉴스는 온통 32년 만의 제주도 폭설을 전하기 바빴다. 제주 공항에는 이미 8만명의 관광객이 갇혀 있었고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뉴스는 며칠째 전파를 타고 쭉 뻗어나갔다. 직장 생활 14년 6개월, 단 한달도 쉬어 본적이 없던 내가 새로 갈 곳 없이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찾아간 곳은 제주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혼자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때는 꼭 혼자만의 여행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게 닥쳐올 수많은 일들과 시간앞에 좀 더 단단해 져야 했다. 새로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고 오롯이 혼자인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 스스로도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것, 혼자서도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제주 남쪽에 위치한 표선의 한 작은 마을인 가시리에 있는 숙소였다. 티벳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어 지는 이곳은 '타시텔레'라는 게스트 하우스 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타시텔레'는 티벳말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다'는 뜻이라고 했다.
폭설로 길은 막혔고 가시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쌓인 눈위로 차가 굴러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함께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급박해짐을 느낀다. 아마 다들 돌아가야 하는 회사가 있는 듯 하다. 카페 돌 난로위의 귤 익는 냄새가 점점 더 무르익어 간다. 내일 눈이 더 온다해도 나는 별 걱정이 없다. 휴가를 더 내야 할 일이 없는 나의 시간은 오랜만에 진정 이곳에 멈춰져 있었다. 계속 되는 폭설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게스트 하우스 식구들과 옥상에 내린 눈으로 팥빙수를 해먹고, 주방에 남아 있는 채소와 재료들로 저녁 반찬이 풍요로워 지는 하루하루가 왜 그렇게 따뜻했을까.... 기억 저멀리 그 날의 아련함이 몰려온다.
그렇게 하루가 또 가도 비행기가 뜬다는 소식은 없다. 오후 해가 질 즘 한 사내가 카페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연예인이다'하며 그를 반겨 주었다. 그는 가끔 타시텔레에 묵어가는 진짜 연예인 인 가수였다. 인디밴드를 하는 그를 알아본 팬들은 반가움에 난리가 났다. 그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본인의 곡들을 불러주었다. 눈으로 가득한 겨울 산장에 나만을 위한 콘서트가 열리는 기분이다.
콘서트와 같던 뜨거운 시간이 끝나고 어스륵 해진 저녁 그 가수와 몇몇 팬들은 맥주한잔씩 기울이며 사는 이이야기를 내어 놓았다. 이야기 속에 가슴아픈 사연들이 묻어난다. 타시텔레는 그렇게 가슴속에 하나씩 아픈 사연을 묻고 오는 사람들의 조용한 안식처 였을지도 모른다. 내 가슴에 무거운 사연을 꽁꽁 메달고 그곳을 찾았던 것 처럼.....
이후 나는 그 가수의 노래들을 찾아 들었고 한동안 그의 노래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짙은 그의 노래엔 아직도 사랑하는 그녀가 있었으니까....
2016년 나에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만들어 준 그곳은 이제 하루 묵었다가는 나그네 게스트를 받지 않는 다고 한다. 가슴에 아픈 사연 하나씩 품고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 만져 주는 곳.... 그곳을 지나쳐 가는 많은 사람들이 티벳말로 '타시텔레'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