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기쁨

파스 뿌린 발목을 애달파하며.

by 칠성상회

달려보기 시작한 지 세 달 차, 달포쯤은 매일같이 뛰던 것을 어제 처음 하루 쉬었다. 왼쪽 발목이 우리하게 아파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인데, 오늘 아침 일어나 첫 발을 내디뎠을 때에도 왼발이 여전히 불편하여 파스를 몇 차례 뿌리며 상태를 살피고 있다. 태초부터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장딴지 근육만 믿고 요 며칠 막판 질주를 하며 까분 것이 화근인 듯하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근 몇 년 운동의 이응 근처에도 에구 무서라하며 가지 않았던 내가 이제 통통 뛰는 것을 한참 못하게 될까 봐 시무룩해지다니, 누가 들으면 족히 일 년 이상은 달리기 마일리지를 쌓고 있는 운동인이라고 오해할 일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천식을 앓았던 나에게 달리는 행위는 늦었을 때 해야 하는 것 그 이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희한할 노릇이다. 나의 뇌 속에 달리기라는 단어와 즐거움이란 감정을 잇는 미묘한 회로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몸의 기쁨이다. 막 시작했을 땐 500m나 뛰었을까,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가슴팍이 쥐는 듯이 아파왔다. 심장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길에서 쓰러져 버리면 어쩌지? 앞서간 남편이 계속 뛰고 있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면? 1km를 채우기도 전에 복동이와의 가상 이별을 수차례 겪으며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던 한 두 주가 지나고 가슴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페이스, 러닝화, 심박수, 케이던스 같은 것들을 검색하며 알고리즘에 호구 잡힌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러닝 간증들을 읽게 되었다. 죽을 둥 살 둥 진땀을 흘리며 겨우 2km가량을 뛰던 나는 사람이 쉬지 않고 5km 이상을 뛰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가자미눈을 한 채 질투와 의심 가득한 몇 주를 보내면서도 그저 오기로 매일 밤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그러던 중 학기말 워크숍 숙소에서 나는 대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에어컨 아래서의 트레드밀이라니. 한 호텔의 쾌적한 런닝머신 위에서 처음 6킬로를 뛴 이후 매일 40분가량을 안팎에서 뛰고 있는 중이다. 달리고 있는 나 자신에 취해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볼 때마다 커다란 거북이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지만, 정직하게 심박수가 점차 노멀에 가까워져 가는 것을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단단하고 확실한 달리기의 동력이다.


그리고는 마음의 기쁨이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짬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기는 내가 숨어들 수 있는 시간.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물론 그 운동화는 비싼 것일수록 더 좋다는 것이 맹점- 툴툴 마음의 군더더기를 조금이라도 더 길바닥에 떨궈낼 수가 있었다. 달리기를 했다고 대단한 현자가 되어 돌아오지는 못하지만 곧 후회할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을 흘리는 횟수는 줄었으니 이 얼마나 유익한가.


나는 매일 성실하게 살면 어디에라도 다다를 것이라는 고지식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매일 퀘스트를 깨며 살아도 인생을 마음대로 끌고 가기에는 무작위의 변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꿈꾸는 것이 더이상 즐거움일 수 없는 나에게 내 두 다리로 뛴다는 것은 일종의 위안이다. 움켜쥐려 애써도 모래알처럼 스스스 빠져나가는 나의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확실히 있다는, 내가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런린이로서 너무나 거창했다. 그러나 어찌하나, 저녁 햇살은 길어지고 이제 가을이 다가오는데. 뒹구는 낙엽들 위로 내딛을 발걸음과 함께 페어링할 음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것을.

그러니 탈나지 말고 계속 굳세어라, 내 발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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