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이유 없이 끌리지 않는 공연이 있다. 나한테는 라이온 킹이 그런 공연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니 유치할 것만 같았고, 졸렸다는 친구의 후기가 그렇고. 게다가 수수료 얹어 35파운드가 가장 싼 티켓인데-다른 뮤지컬들에 비해 비싼 편-, 그 와중에 온라인 구매도 까다롭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 날은 덥고 타비스톡에서 탄 버스는 어떻게 된 게 걷는 것보다 느려 홀본에서 하차를 하고 말았다. 튜브로 얼른 가보자 하고 내려갔더니 피카딜리 서쪽 방면은 삼십 분 넘게 운행 지연이란다. 백날 불퉁거려봐야 선택지는 결국 다시 역을 빠져나와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내 발등이나 찍어야지 누굴 탓하리. 유치하게도 기대에 못 미쳤을 시, 아니 예상했던 것처럼 별로였을 시 발사할 짜증을 약 오백 발쯤 장착하고서 자리를 잡았는데.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잘 바뀌는 나는 시작과 동시에 곧장 자세를 고치고 앉아 극에 빠져들었다. 인형 탈을 쓰고 하는 공연에 감정이 이만큼이나 이입될 줄 몰랐다. 죽어가는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섬바디 애니바디 찾는 심바 때문에 울컥. 내가 심바 때문에 눈물을 훔치다니. 숨죽인 채로 왕을 보내는 주술사의 진혼곡을 들을 때엔 소름이 돋았다. 이 배우가 아니면 안 되었을 배역이고, 이 배역이 아니라면 이 사람은 다른 작품에서 대관절 무엇이었을지 상상이 안 되는 에너지.
움직이는 무대장치와 배우와 그림자 조명만으로 만들어내는 아프리카 전경은 환상적이진 않아도 설득력이 있었다. 쓰리디 영화관에 온 건 아니니까. 사람이 구상하고 구현해 낼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보는 데에서 오는 감동. 사자, 표범, 기린 등 동물을 흉내 내는 배우들의 몸짓이 우스꽝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아름답고 우아하여 어린이를 위한 공연일 거란 편견이 무색했다. 인물들의 말투와 행동거지는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들었던 그것과 똑같이 실감 나고 능청스러워 빵빵 터진다. 티몬과 품바가 심바를 처음 만나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는 장면은 얼마나 유쾌한 지.
웅장하거나 으스스하거나 또는 장난스러운 무대 위의 느낌과, 드레스 서클 양 옆의 드러머들, 무대 밑 오케스트라의 호흡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즐거운 구경이었다. 모든 요소들이 굉장히 잘 맞물려 빠르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궁리와 노력이 멋지게 도드라지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