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이방인으로 지내기

영어 영어 영어

by 칠성상회

일주일에 한 번 클리너가 집에 오는 날에는 보통 편하게 집을 치울 수 있도록 도서관에 가거나 동네 마실을 다녀오곤 한다. 오늘은 급박한 과제 때문에 집순이 모드라 이불 커버 가는 것만 부탁드리고는 민망스럽게 책상에 앉아 계속할 일을 하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불가리아에서 온 지 이 년 되었다는 이 분은 원래 미술을 전공한 후 교직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다 잠깐 플로리스트로 전업을 하기도 했었다고. 현대 미술을 좋아하기에 테이트 모던이 참 인상 깊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지금 영국 런던에서 클리너 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클리너를 낮추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지금 하는 일보다 더 잘할 수 있는,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모국에서의 전공이나 직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영어가 서투른 외국인으로 살기에 폭폭 할 때가 많겠구나 싶은 왠지 모를 동질감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남의 나라에서 밥벌이를 할라치면 - 혹은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다른 조건들을 제치고 언어가 가장 먼저 묵직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낯선 환경에 놓이는 불안정한 시기에 자아정체성은 주변의 여건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데, 영어권 나라에 사는 이방인에게 영어 구사 능력은 본래 아이덴티티를 흔들 정도로 큰 부담이 된다.


강의실에서 정리되지 않은 영어로 말을 꺼냈다가 우스운 사람이 될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은행업무를 볼 때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긴 줄이 줄어드는 동안 할 말을 되뇌며 가슴 졸이던 경험이 적잖으며, 영어가 유창한 한글학교 꼬마들을 그저 언어 때문에 부러워했던 순간도 여러 차례다. 원어민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논문을 쓰느라 자세히 읽었던 주제와 관련해 그가 잘못 알던 부분을 바로 잡아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제야 이 친구가 나를 더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을 때 어쩐지 개운치 않았던 기억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언어가 그렇다. 저들은 고작 한 종류, 나는 두 종류의 언어를 쓸 줄 아니 꿀릴 것 없다고 암만 최면을 걸어도, 영어 때문에 작아지고 마는 경험들을 별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본인의 선택이니 그런 경험들이 나나 우리 집 클리너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자아와 가치가 공용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희미해지거나 작아지면 안 된다는 것.


외국에 나와서 살 일이 없는 사람까지 영어를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끄러운 발음과 문법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모국어로 자신의 취향을 가꾸고 레퍼토리를 쌓는 일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가다 보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읽거나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생긴다.


다른 나라 말은 그 순간에 유용하다. 영어로 된 수많은 책이나 영화를 접할 때, 여행지의 갤러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듣거나 작품의 설명을 읽을 때에 영어는 내 관점을 보다 넓게 가꾸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한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나를 대할지도 모르는 링구아 프랑카 유저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임을 표현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과 소통하도록 돕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살 일이 없을 내가 아이러니하게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위와 같다. 애기 티도 채 벗지 못한 상태로 영어공부의 출발선에서 등 떠밀려 달리고 있을 아이들이 목표 없이 영어에 휘둘리지 않도록 다독여 주고 싶다. 전혀 글로벌하지 않은 언어 환경에서 자라면서 원어민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기를 요구받는 아이들에게,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발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게끔 돕는 안내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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