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과 간디 흉상의 의미를 생각하다.
지난주 내셔널 갤러리에 다녀온 후에 모네의 그림이 부쩍 좋아져 도록을 한 권 샀다.
Poppies at Argentuile. 와이프, 아들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때라 그림도 화사하고 밝다는 설명에 괜히 흐뭇해하며 그림을 보는데 poppies가 눈에 익는다. Poppy-양귀비-라면 11월 첫 주 일요일이었던 Rememberance Day에 너도 나도 일 파운드씩을 기부하고 가슴에 달고 다니던 빨간 종이꽃이다. 그래서 이 날은 Poppy Day라고도 불리운다. 유치원 아가들이 만든 것 같은 종이꽃을 다들 왜 매달고 다니는지 궁금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시체가 수습되지도 않은 폐허의 땅에 유일하게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이라 전쟁 희생자 추모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과거를 참 소중하게 여긴다. 국가차원으로 반성도 열심히 하고. 노예무역을 번성케 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다 드러내고 반성의 의미를 담아 길거리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들. 1666년의 런던 대화재가 시작된 지점에 기념비를 세우고, 런던박물관에는 화재로 인하여 원형을 알기 힘들만큼 녹아내린 잡동사니들을 그러모아 참혹했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보게 한다.
학교 가는 길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길래 한눈 팔러 잠시 들른 타비스톡 스퀘어 중심부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흉상이 있다. 영국에 반하여 불복종 운동을 펼쳤던 인도의 민족 지도자 간디의 흉상에, 적잖은 시민들이 꽃을 들고 찾아와 그를 기린다. 과거의 허물을 인정하고,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사람의 삶 그 자체를 고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이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무뚝뚝하여 다정한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연결하려는 태도는 참으로 일관성이 있다. 과거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는 이솝 우화 속 갈대처럼 유연하고도 강하다. 과거의 공간에 현재를 한 겹 한 겹 쌓아가며 살고 있으니,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인데도 런던은 점잖고 수수하여 기품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