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말고 재즈바를 좋아하세요?
라라랜드와 재즈바의 상관관계
약 한달전부터였을까요. 라라랜드의 음악이 전두엽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엔딩신의 딱딱거리는 - 손가락과 손바닥이 부딪쳐대는 소리 - 가 환청처럼 들려오곤 했습니다.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죠. 왜 자꾸 생각나는지 명확한 이유조차 모른채로, 그저 그래야만 한다는 목적의식만으로 재즈바를 갔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재즈바를 좋아하세요?
루이 암스트롱은 "만일 당신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재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브 부르백은 "재즈는 자유를 뜻합니다. 재즈는 자유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나가서 즉흥 연주를 해보고, 위험을 감수해보고, 그리고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마세요. 그런 건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맡겨두세요."라고 말했죠. 이 음악을 문장이나 단어 하나로 정의하려 하지 말라는 선언입니다. 재즈는 그저 샤빱두비두밥일 뿐입니다.
재즈바를 가야겠다는 생뚱맞은 생각에 유일하게 연관되는 것은 영화 ‘라라랜드’였습니다. 라라랜드는 꿈을 좇아가는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세바스찬은 재즈의 부활이라는 목표가 있습니다. 화려했던 과거의 재즈신을 그리워 하고, 그렇기에 재즈바를 열어 올드스쿨 재즈의 맥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미아는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고, 막막한 현실을 걱정하면서도 배우의 꿈을 놓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본인의 목표를 추구하며 서로를 만나고, 사랑하고, 엇갈리고, 변질되고, 헤어지고, 성공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런 평을 남겼습니다. “'라라랜드'는 함께 쌓아온 관계의 역사보다 홀로 키워온 꿈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두 예술가의 빛나는 성공담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그건 꿈을 향해 질주하느라 관계를 상실해버린 두 연인의 아픈 실패담인지도 모른다.” La-La-Land, 몽상의 세계는 그 속에서만 가능한 꿈과 관계의 병존을 그리고 있지만, 엔딩을 본 관객들은 현실로 던져집니다. 그건 꽤나 불완전하고, 잔인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더 없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기도 합니다. 자, 어딜 로동자가 감상에 젖어있습니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의 배를 불리러 가야죠. 현생을 살 시간입니다.
재즈바를 좋아하세요? 전 좋아합니다. 저렴한 샴페인과 스윙이 함께하는 그곳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오감을 충족시키는 그 곳이 퍽 마음에 듭니다. 샤빱두비두밥을 들으며 감정이 고조되고, 그 속에서 사유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그곳에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갔지만, 앞으로는 가보고 싶다는 취향에 따라 방문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왜 가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나고요?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재즈바를 가봐야 한다는 강박은 들지 않습니다. 입원할 일은 없으니 다행인가요?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지만 사실 원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앞부분, ‘회자정리’뿐입니다. 불교의 경전에서 나온 말로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는 제자 아난존자에게 주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귀착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례 그런 것이거늘, 아난존자는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는가?” 슬프다는 건 슬픈 감정을 느낀다는 뜻이고, 감정을 뜻하는 ‘pathos’는 문자 그대로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기에 고통스럽습니다. 특히나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심한 스트레스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별을 극복하며 멜랑콜리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The show must go on. 그래도 쇼는 계속 되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