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

집착과 고통을 넘어서

by 쿨럭쿨쿨럭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정수이자, 가장 유명한 불교 경전이기도 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등의 경구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깊은 진리나 가르침을 떠나서, 저한테는 학부시절 모 교수님이 중간고사에서 반야심경 전문을 써내라고 하신 아픈 추억이 먼저 떠오릅니다(덕분에 재수강을 했습니다). 14년도에 의미도 모르고 달달 외우던 텍스트를 2022년에 보니 새롭네요.


반야심경은 260자가 채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가볍게 읽어보면 몇분이 걸리지 않는데, 깊게 읽어보려면 한도 끝도 없이 파고들어야 하는 매력적인 텍스트입니다. 연관된 개념으로는 공 사상이 있고, 러프하게 요약하면 모든 것에는 자성(본성)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성, 내지 실체가 없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는 회의주의 내지 허무주의를 얘기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쟁론>> 본문에 등장하는 니야야학파와 나가르주나의 논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해당 논쟁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러셀의 역설을 먼저 읽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러셀의 역설 내지 도서관 사서의 역설은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는데, 그 중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 ‘이발사의 역설’입니다.


“세비야의 한 (남자) 이발사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앞으로 나는 자기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수염을 전부 깎아줄 것이오. 다만 '스스로 깎는' 사람은 깎아주지 않겠소."
이 때 이 이발사의 수염은 누가 깎아줘야 하는가?
다른 사람이 이 이발사의 수염을 깎아주는 경우 이 이발사는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에 속하므로, 선언한 바에 따라 자신의 수염을 깎아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수염을 깎는다면 이 이발사는 수염을 '스스로 깎는' 사람에 속하므로, 선언한 바에 따라 자신의 수염을 깎을 수 없다. 이 이발사는 어찌하면 되는가?“


역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기억한 채로, 니야야학파의 공격에 반박하는 나가르주나의 말을 봅시다.


만일 그대가 "모든 것의 자성은 그 어디든 존재치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자성을 갖지 않는다는 그대의 바로 그 말은 결코 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만일 "모든 것은 자성이 없다."라는 바로 그 말만은 자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모든 것은 자성이 없다."라는 그대의 주장은 파괴될 것이다.

사물들이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을 공성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은 자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다'라는 나의 말은 자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논의는 파괴되지 않는다.

"회쟁론" 1ㆍ2ㆍ22ㆍ24

니야야학파는 ‘공’의 개념을 허무주의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는 명제에 집착하여 러셀의 역설을 활용해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하려 합니다.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그 말만은 자성이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자 나가르주나는 만물이 ‘공’하다는 것은 인연에 의해 탄생하고, 변하고,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답합니다. 자성이 없다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덧없기에 포기하자는 허무주의 내지 니힐리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할 대상이 없음을 인지하고 이를 초월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때로 우리는 많은 것에 집착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는 관계성을 통해 정립된다고 가르칩니다. 특정 좌표를 지닌 채 관측되는 결과값이 아니라, 인과 연에 의해 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착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째서 마음에 걸림이 있고 두려움을 느끼며 헛된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종교를 떠나서 반야바라밀다, 피안에 도달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많은 것을 집착하고 놓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말이겠습니다. 많은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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