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에 관한 생각

'납골당의 어린왕자'를 읽고

by 쿨럭쿨쿨럭
겨울의 생각은 기능적이었다.
생존은 삶을 지키는 일이다. 삶에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음악은 마음의 언어이며, 정신에 스미는 윤활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의 파열을 진전시킨다. 보이지 않는 내구성을 무시한 공동체 치고, 멀쩡히 구실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곳엔 사람의 삶이 없는 까닭이다.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가.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가’
스트레스가 극심한 환경에서는, 동물도 자위행위를 한다고 들었다. 물론 자연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실험용 우리, 혹은 동물원처럼 모든 곳이 억압된 공간에서, 행위의 빈도는 비정상적으로 증가한다. 소년에게 그것은 즐거움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것 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즐겁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기 때문에. 겨울은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겨울이 다른 세계의 관객들로 인해 괴로워할지언정,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년은 그들을 이해했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납골당의 어린왕자' 중 57화의 일부분입니다. 삶과 생존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사회복지학과에 잠깐 다녔던 적이 있는데, 당시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자기소개서에 다음의 문장들을 적었습니다.

전 마포대교를 뛰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곳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높은 난간이 서있습니다. 그 난간을 볼 때마다 한국 사회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돋습니다.
자살시도자들은 각자의 괴로움 때문에 힘든 결정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에 대처하는 방안은 그냥 죽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죽도록 괴로운 사람을 살려놓기만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비참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들의 괴로움을 긍정하고, 같이 해결해가는 것일 겁니다. 결심의 원인을 없애야 자살시도자들이 진정으로 살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사람을 제대로 살리는 길입니다

거친 문장들이지만, 그때도 지금도 생각은 동일합니다. 삶은 생명의 유지 그 이상입니다.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가.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가.'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며,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을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신과 마음이 죽어있는 사람을 살아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생존만이 삶의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가 문제됩니다.

때로는 소명이 내 삶의 목적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럴듯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의 사명이 삶의 목적이라면 퍽 멋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건 소명을 추구하는 과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한 착각입니다. 사람이 그의 소명을 위해서만 존재할 리 없습니다. 소명을 위해 안배된 것이 인간이라면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건 도구나 기계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지와 주체성입니다. 각자 삶의 주인공으로서 매 순간 선택하고 그를 통해 결과를 성취하는 것,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듭니다. 이 과정을 통째로 부정하고 소명만을 위해 살아가는 건 주체성이 거세된 노예에 가깝습니다. 결국 흔히들 인간의 서사적인 고민이라고 부르는, 목적의식 내지 소명도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들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닐 겁니다. 이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수많은 것들을 배제하고 나니, '행복' 이외의 것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삶의 주된 목적은 행복입니다. 그리고 목적이 행복한 삶이라면, 추구하는 과정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사람에게 삶의 매 순간이 행복하기란 어렵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고통과 권태의 양극을 오간다고 표현했습니다. 많은 것이 결핍된 우리의 삶에 깊게 와닿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과 쾌락은 잠깐입니다. 삶은 시련과 좌절로 가득합니다. 그 정도가 심한 이들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도 우리가 생을 던지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을 알고 그 뒤에 잠깐이라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당장은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찾아내고야 말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가'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내 삶에 '정신에 스미는 윤활유'를 마련해 놓았는지,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지, 내가 죽어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 것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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