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

채찍질은 말을 죽게 만들수도 있다-수험생활 투병일기

by 쿨럭쿨쿨럭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니체. 우상의 황혼 中

한달하고도 반쯤 전, 저는 입원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수험생활 중이던 저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강의는 늦기 일쑤였고, 저녁만 되면 기운이 없어 집에가서 누워야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싶어 주치의 선생님을 만난 날, 코로나 후유증이 심한 것 같다는 저의 말에 주치의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증세는 코로나 후유증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각종 검사를 돌리기 시작했고, 각종 수치들을 보고 종래에는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주치의 선생님께서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OO씨, 주마가편을 하다가 말이 죽을 수도 있어요. 채찍질을 해서 잘 달리는 말들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말들만 있나요? 그건 일반화의 오류에요. 채찍질 때문에 말이 죽을수도 있는거에요."


당황한 저는 사회로부터 받는 압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가까이는 가족부터 원우들, 교수들, 나아가 정해진 시스템으로부터 받는 압박까지. 그 누구도 피로감을 호소하던 저에게 쉬라고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수험의 과정은 당연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러니 견뎌서 얼른 이 곳을 탈출해야 한다고. 건강은 나중에 챙겨야하고 정작 끝나고 나면 괜찮아지더라고 하던 얘기들을 떠올리며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아프게 박혔습니다.


OO씨, 그 사람들이 OO씨의 혈액 데이터를 가지고 있나요?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정보들은요? 그 사람들은 OO씨의 몸상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면 되나요.



제가 속한 대학원은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곳이고, 3년이라는 기간이 정해져있습니다. 즉, 모두가 3년간 하나의 시험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곳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쉬는 것을 정상궤도에서 이탈한다고 생각하고, 건강이 어느 정도 상해서 나가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그 정도가 다를 뿐, 모두가 아픈 상황에서는 아프다는 말이 별거 아니거나 심지어는 유난으로 보였을 수 있겠습니다. 그들을 탓하려는 건 전혀 아닙니다. 결국 최종결정권은 본인에게 있고, 제 몸을 관리하지 못한 건 오롯이 제 책임입니다. 다만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주변의 말들에 필요 이상으로 휘둘린 게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한 자신이 아쉬웠습니다.

니체는 그의 저작 '우상의 황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물론 세상에는 시련을 이겨내고 강해지는 욥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인해 스러져 간 수많은 이들은 기억되지 못합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다를 수 있고, 모두가 고통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것도 아닙니다. 만일 고통을 이겨내더라도 그 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면, 그것을 온전히 이겨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삶이 행복할 리 없습니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애초에 건강의 문제는 정신력이나 기세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건강은 뒤로 미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합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적신호가 켜졌다면, 때로는 기다려서 초록불이 켜지길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그건 '일탈'도, '도피'도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정면승부를 펼치기 위해서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고, 현명하고 전술적인 판단입니다. 잠깐 멈추는 것이 어색할 수 있겠지만, 쉬어간다고 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불행들이 일어날 확률은 적습니다. 인생은 질주가 아닙니다. 흔히들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걸어서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지속되기에 매번 쉬어가서야 곤란할 때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잠깐 호흡을 고를 때인지는 본인이 숙고해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상태는 본인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느끼기에 지금 마주하는 고난이 너무 크고 넘기 힘들다면, 잠깐 쉬어가야 하는지 질문해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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