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라라든가 기본에 충실하라 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취해 본질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제주에 대한 기본은 무엇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짧은 역사 이전에 자연사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지구 상 곳곳에 남아 있는 자연의 기록들. 특히 제주도는 화산섬으로서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뉴욕에 가면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가봐야 하듯이 제주에 가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먼저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몇 번의 제주 방문만에 처음으로 이곳에 가게 된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찾다 보니 이제 제주의 속살이 궁금해진 것이다.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에 주의할 점이 있다. 박물관의 규모가 어떤가, 구성이 잘 되어있는가를 떠나서 평소에 박물관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유물 하나 설명하나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태도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혹시 박물관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흥미도 없이 들어가 본 것이 마지막이라면 박물관을 온전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기괴하게 생긴 돌멩이가 아아용암*인지 파호이호이용암**인지가 흥미를 주기보다는 지루함을 던져줄 테니 말이다.
* 현무암질 용암류 표면의 한 형태. 표면이 거칠고 요철이 많으며 특징적으로 작은 가시들이 밀집해 있다
**현무암질 용암의 한 종류로 점성이 낮아 유동성이 높은 용암으로 표면이 매끄럽고 넓은 지역을 덮는다
나는 나름 예습을 약간 하고 들어갔더니 박물관의 설명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책에서만 읽었던 아아용암과 파호이호이 용암의 질감을 바로 눈앞에서 봤을 때의 설렘이란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가 아닐까 그리고 그 예습한 사실에 더해 박물관의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즐거움이란.
*논어 학이편(學而篇) : 배우고 때맞추어 그것을 익히면,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공부를 할 때 예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습이란 선행학습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수업에서 배워야 하는 내용을 온전히 100% 이해하고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오늘 배우는 내용이 뭔지 목차와 용어의 정의 정도만 익히고 들어가면 충분하다. 사람마다 뇌의 데이터 속도 처리가 매우 차이가 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강의자가 앞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그것을 저장하고 동시에 그 설명을 이해까지 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좀 모르는 개념이 나와서 이게 무슨 소리지?라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 사이에 수업 진도는 앞으로 쭉쭉 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예습을 통해 미리 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은 개략적으로 이해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수업에서 이해를 하고 이해가 안 되면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습이 없이 수업을 들으면, 수업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나중에 복습을 하면서(보통은 나중에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면서) 수업내용을 이해하고, 아 이게 그런 내용이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매우 많다. 그러다 보니 심화 내용을 이해하려면 책을 몇 번씩 더 읽어보고 스스로 깨우쳐야 하니 공부 시간이 곱절로 걸릴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커서 박물관에 가게 된다면, 아이가 자연과 역사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대강의 내용을(아이를 이해시키는 게 성인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훨씬 어렵겠지만) 설명을 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저 박물관에 적힌 설명만 읽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설명과 아이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아이도 그것에 대해 더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결국 의심이라는 것은 호기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절대적인 왜?라는 질문의 반복)은 사실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니겠는가.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그냥 그런 것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라는 끊임없는 질문의 반복은 아이를 성장하게 만든다.
아이의 성장만일까. 근대 과학의 발전도 결국에는 왜?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지 않았는가. 왜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질까(실제로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지는 않았겠지만)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낳았고, 왜 물이 끓으면 뚜껑이 들썩거릴까라는 호기심은 증기기관을 만들어내고 열역학을 낳지 않았는가.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싶다. 호기심을 가지면 세상은 그만큼 더 재밌어진다. 심심할 틈이 없다.
이상하게 나는 세계 어디를 가도 당신 중국인 아니냐는 질문을 중국인들에게 많이 듣는다. 예전에 홍콩에 갔을 때 나를 대륙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대륙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중국어로 뭔가를 계속 물어봤고, 보라카이에 갔을 때는 어느 중국인 무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중국어로 뭔가를 한참 얘기하다가, 내가 전혀 이해를 못하는 표정에 그들이 하는 얘기에 관심조차 안 가지니 그제야 머쓱하게 영어로 당신 중국인이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제주에서도 삼성혈에서 나오는데 중국인 여자 2명이 나를 손짓으로 불러 세우더니 지도를 들이민다. 삼성혈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어디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나도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른다고 영어로 설명하는 와중에 상대가 대뜸 또 내가 중국인이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내가 그렇게 중국사람처럼 생긴 건가. 그래서 중국어로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말해줬더니(我不是中国人。 是韩国人)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짧은 중국어와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방향을 알려줬다. 물론 유창하게 저기 보이는 숲 속에 있는 건물이 박물관이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숲 속이니 건물이니 하는 단어가 중국어로 전혀 생각이 안나는 관계로 정말 교과서적으로 대답해줬다. 往前走, 往右拐. 번역하면 학창 시절 영어수업시간에 들어보셨던 문장일 것이다. Go straight. Turn right. 직진하다가 우회전이라는 단순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 중국인들에게 谢谢(감사합니다)를 받아냈으니 성공이 아니겠는가.
내가 외국인에게 한국말로 당신 한국사람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외국인이 그걸 알아듣고 한국어로 한국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면 황당하긴 할 것 같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제3 국이었다면 낯선 이국땅에서 모국어가 외국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면 조금 당황스러우리라. 나중에 대만 여행기를 쓰면서도 소개하겠지만 대만에서도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게 된다. 아직은 제주 여행기가 많이 남아 언제 쓰게 될지 모르지만 대만 여행기를 쓸 때 자세히 소개하겠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날이 올 때까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라고 해야 할까. 유튜버처럼 "구독과 좋아요 알람 설정 부탁드립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