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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uk Park Mar 21. 2019

독학으로 논문 쓰는 안내서

8. 이제 글쓰기

#글쓰기의 어려움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연습한다. 요즘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도 한글을 읽고 쓰는 연습 정도는 한다. 초등학교부터는 본격적인 글쓰기 연습에 들어간다. 매일 일기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동시 짓기, 글짓기 대회 등을 통하여 글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더 논리적인 글을 읽고 쓰는 연습을 하게 된다. 논술시험이 대표적인 논리적인 글쓰기의 예이다. 대학교에서는 또 어떠한가? 매번 제출하는 과제나 중간 기말 시험은 중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이제 단답형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글쓰기라는 것을 연습한 기간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시기까지 계산한다면 16년이라는 기간이 나온다.


세계적인 글을 쓰고야 말 테닷!

그렇다면 과연 글을 쓰는 것은 쉬운가? 단연코 어렵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자신의 글을 타인에게 보여주어 비판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인간의 뇌구조는 말에는 익숙하지만 “글쓰기”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글이라는 것이 발명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글쓰기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뇌의 영역인 신피질을 주로 이용하기에 글쓰기는 단연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개발이 덜 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사실 글쓰기는 전문가들조차 어렵다고 하는 영역이다. 사회과학자를 위한 글쓰기의 저자 하워드 S. 베커는 뛰어난 학자일지라도 글쓰기라는 영역은 매우 새로운 영역이며 어려운 일임을 이야기한 바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이 보게 된다. 많은 이들이 글을 쓸 때 격렬한 신경증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자신의 글을, 그것이 미완성일 때는 더더욱,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오죽하면 “저자의 벽”(writer’s block)이라는 용어까지 있겠는가?


#글쓰기의 두 가지 방식

글을 쓰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인물(character) 이 글을 주도해 나가는 방식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기술하는 일기나, 인물들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소설 등이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이다. 두 번째는 주제(topic)가 글을 주도해 나가는 방식이다. 신문 사설이나 논문 등에 쓰이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연습한 글쓰기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당연히 전자에 비해 후자의 경우 연습이 많이 되어있지 못한 것이다.


논문을 쓸 때 우리가 흔히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국어 문법과 관련된 문제  

의외로 국어 문법 문제로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주어를 생략하거나 명사형 단어의 남발로 문장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글의 기본은 간결함이다.


문단의 구성력(우뇌적 사고)

문단의 구성력은 연구자가 의도하는 대로 논의를 끌고 갈 수 있는 구성력을 말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최초 의도가 아닌, 이전 문장에 따라 다음 문장을 쓰게 되어 글의 흐름이 바뀌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이러한 능력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개요에 얽매여 새로운 내용을 창안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글을 자유롭게 쓰면서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요를 작성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을 넣어주면 좋을 것 같음) 문단의 구성력은 글쓰기의 전략적 사고와 연관되어 있다.


논리적 흐름(좌뇌적 사고)  

논문의 논리 연결 방식은 논증의 구조를 띤다. 뒤에서 제시된 말은 어딘가에서(보통은 문장 전후) 뒷받침 내용이 제시되지 않으면 논리적 비약이다. 이러한 부분은 좌뇌의 영역으로 치밀한 논리력이 요구된다.


아이디어의 부족

사실상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다 하더라도 쓸거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글을 쓸 수가 없다.


아이디어를 달라!!!


#두괄식 문장을 연결해 보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중심이 되는 문장들만 작성해서 연결시켜 보자. 흔히 두괄식이라고 말하는 첫 문장에 결론을 내고 이를 보충해 가는 형식의 문장을 만들되 보충 문장을 적지 말고 남겨두자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요즘 대세는 4차 산업혁명이다. (보충 문장들 생략)

...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보충 문장들 생략)

...


인공지능은 유용하지만 동시에 우려되는 점도 있다. (보충 문장들 생략)

...


지금 가지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들은 많이 없었지만 주로 데이터의 정확성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보충 문장들 생략)

...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보충 문장들 생략) 

...


문단의 첫 문장들만 써 놓고 논리가 연결되게 하되 생략했던 보충 문장을 연결한다면 1~2페이지의 글이 완성된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각 문단 간을 연결하는 마지막 문장은 다음 문단의 첫 문장과 약간씩 연결해 주면 좋다. 차후에 잘 된 예를 하나 들도록 하겠다.


#독자를 상상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글을 쓸 때는 글을 읽을 독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독자의 수준을 예상하여 그에 맞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작품의 경우 독자가 모호하다. 그러나 논문의 경우 글을 읽을 대상이 비교적 명확하다. 먼저는 지도교수님, 동료들, 가족이 있겠고, 다음으로는 같은 분야의 학자들 등이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논문을 취미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은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독자를 상상하며 말한 것을 녹음해서 글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글이 잘 안 나갈 경우 논문의 필요성과 의미를 설득한다고 생각하고 녹음해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걸작보다 다작이다

흔히 하는 실수가 내가 쓰는 논문은 세계 최고의 걸작품을 남길 것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서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사람은 부담스러워서라도 결국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은 걸작보다 다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 번 연습해야 한다. 1편을 잘 쓰려고 하지 말고 10편을 대충 쓰고 다듬는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훨씬 빠르다. 사실 질도 훨씬 낫다.


#문을 닫아놓고 쓰고 문을 열어놓고 소통한다

글을 쓸 때 문을 닫아놓고 쓰고, 다 쓴 뒤에는 문을 열어놓고 소통하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자료를 보고 타인과 의견을 나누는 것은 언제라도 좋지만, 아이디어를 글로 만들 때는 다른 이의 간섭을 받지 않고 쓰는 것이 중요하고, 다 쓴 뒤에는 다른 이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보완해 가는 게 좋다는 것이다. 글 쓰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 소설가 김영하의 작가 후기를 인용해 본다.


참고: 소설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작가 후기

...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 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소설가라는 존재는 의외로 자율성이 적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문장에 지배되고,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을 따라야 한다. 소설의 끝에 도달하면 작가의 자율성은 0에 수렴한다. 마지막 문장은 앞에 써놓은 그 어떤 문장에도 위배되지 않을 문장이어야 한다. 무슨 창조주가 이래? 이럴 리는 없다.


이번 소설은 유난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하루에 한두 문장씩밖에는 쓰지 못한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꽤 답답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주인공의 페이스였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 아닌가. 그래서 마음을 편히 먹고 천천히 받아 적기로 했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


여행자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자면, 오직 나만이 그 세계에 방문했다는, 오직 나만이 그 세계에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아마 이 소설은 끝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에게 얹혀살았다. 오밤중에야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 일어나는 게으른 아들과 달리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어나 집 안팎을 돌보셨다. 항상 어지러운 내 책상이 보기 싫었을 텐데 용케 잘 참으셨다. 하루는 내가 “누가 아침마다 내 책상만 치워줘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될 텐데”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이층 내 방에 올라와 책상을 말끔히 치운 후,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비우고 물로 말끔히 씻어 다시 갖다 놓으셨다.


고마운 이들이 많지만, 이 소설은 작가 지망생 아들의 재떨이를 매일 비워주신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다. 내가 해외에 머무는 동안 큰 병을 앓으신 후 아직도 투병 중이시다. 건강히 오래 사셔서 언젠가 아들이 ‘꽤 괜찮은 작가’가 되는 날을 보셨으면 좋겠다.


2013년 7월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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