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끌리는 서론 쓰기
글쓰기에 정답이란 없지만, 사실 우리는 초등교육 시기에 배운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글의 기본 구조에 익숙해 있다. 논문의 구성 역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보통 다음과 같은 구성을 보인다.
서론
선행연구 정리
가설 설정(선행연구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음)
연구방법론(연구설계)
연구결과 제시
결론 및 시사점
참고문헌
초록
아마 서론, 결론 및 시사점 이외에 나머지 부분이 본론에 해당하는 영역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참고문헌과 초록은 맨 마지막 장에 정리할 예정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다면 논문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3가지 부분 중에 어떤 부분일까? 보통 글의 핵심 내용이 결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서론이 가장 중요하다. 서론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쉽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서론에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먼저 연구의 배경이 들어가야 한다. 보통 이 부분에는 최근에 관심을 받는 이슈(연구 주제와 관련된) 등이 간략하게 요약된다. 다음은 문제제기이다. 앞서 제기한 이슈와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연구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 뒤에는 관련 분야의 선행연구들도 간략하게 정리되기도 한다. 다음은 연구의 목적 부분으로 논문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약속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전체 윤곽 및 흐름을 정리하면서 논의를 이끌어가게 된다.
연구의 배경: 주제와 관련된 배경 설명, 연구주제와 관련된 현황 및 주요 선행연구
문제제기: 연구주제의 필요성, 중요성
연구의 목적: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
연구의 절차와 흐름: 연구의 전체 윤곽 및 흐름
사람들이 서론에 글의 개략적인 내용만 담으면 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서론에는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서론에는 이와 더불어 연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암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서론을 5~6장 쓰는 것도 아니고 보통 A4지로 1장에서 1장 반 정도 안에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기 위해서는 글쓰기의 기술이 요구된다.
서론은 연구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서론부에 연구의 장점이 확연히 부각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서론은 향후 논의가 전개될 방향을 보여주는 지도와 같기 때문에 서론이 잘 되어 있으면 본문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도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서론에서의 논리 전개 방식을 확장하여 그대로 본론 및 결론까지 끌고 가는 구조가 권장된다. 서론은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내 글에서는 이러이러한 부분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는 부분이므로 글의 앞부분에서 제시한 것을 결론부에서 대구를 이루듯이 해결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 이는 퇴고하는 과정에서 서론과 결론을 일치시키는 작업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논문은 한 번에 완성되기보다는 엉성한 초고를 쓰고 이를 수없이 퇴고해 나가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대학교 교육에서 전문가들이 글을 쓰는 과정은 사실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왜 글을 그렇게 고치는 가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타고난 천재라면 글을 한 번에 완성된 걸작의 형태로 ‘출력’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수없이 퇴고 과정을 거치는 경우를 보아왔다.
우리의 뇌는 중요한 일은 뒤로 미루어 놓는 습성이 있고, 일반적으로 논문 쓰기는 필생의 역작을 남기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순위가 항상 가장 뒤쪽에 있다. 글을 쓰는 방식은 천천히 신중하게 쓰는 방식과 빠르게 대충 쓰는 방식이 있는데, 천천히 신중하게 쓰는 것은 한 단어, 한 문장을 아주 꼼꼼하게 완성하고 다음으로 써 내려나가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 빠르게 대충 쓰는 것은 다시 고칠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쓰고, 쓰다가 막히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식일까?
단언컨대 후자가 더 나은 방식이다. 앞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뇌와 좌뇌적 사고가 적절히 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먼저일까? 우뇌적 사고로 먼저 논리의 방향을 잡고 좌뇌적 사고로 논리의 변곡점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채워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창의적 사고에 대해 논의하는 학자들은 초반에 발산적 사고를 통하여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들을 내어놓고 사후에 수렴적 사고를 통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추려나가는 사고 과정을 겪는다고 말한다. 논문을 하루에 완성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과정은 매일 반복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내용은 글 쓰는 데에도 참고할 만하다.
Wallas의 4단계: 준비(preparation)-부화(incubation)-조명(illumination)-검증(verification)
Guildford의 2단계: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
Amabile의 4단계: 문제/과업 인식(problem & Task identification)-준비(preparation)-결과 생성(response generation)-결과 검증 및 소통(response validation & communication)
그래서 가급적 걸작을 남기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작을 지향하는 것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를 이미 마쳤다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무엇이든 적어보는 것도 글을 시작하기에는 괜찮은 방법이다. 참고로 현대 고 정주영 회장은 직원들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한번 참고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이봐, 사람이 일을 하는 데는 물리적인 한계라는 게 있어.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10일 걸릴 일이 있다고 할 때 20일 기간을 주면 일을 두 배 더 잘하는가? 그렇진 않아. 또 5일만 주면 엄청나게 부실해지나? 그것도 아니지. 문제는 말이야 남들하고 똑같이 해서는 남들보다 결코 앞설 수가 없다는 거야. 남들 열흘 걸릴 일이라면 2-3일에 해치우고, 남들 두 달 걸릴 일이라면 한 달에 끝내야 앞설 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