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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Mar 11. 2020

의인(義人)

의인(義人)의 사전적 의미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언론에 의인에 대한 보도가 가끔 나옵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칭찬들이지요. 검찰은 옳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기관이지만 옳은 일을 직접 행하는 사람들은 드물지요. 검찰에 근무하는 직원이 얼마 전 옳은 일을 직접 행동에 옮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 검찰청의 검찰행정관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을 제압하여 피해자를 구했고, 언론과 검찰방송, 그리고 검찰 게시판에도 게시되어 직원들의 박수를 받고 귀감이 되었습니다.       


아파트단지의 밤 12시, 그 시간이면 아파트 밖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정상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 외부를 도외시 합니다. 술에 취해 세상을 향해 알지 못할 소리를 지르는 사람, 취권으로 전봇대와 대결을 하는 사람들, 부모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우는 부부, 잠들기 힘들고, 자식들의 수능 공부와 게임에 방해되는 시끄러운 소음이지만 일부러 나서서 그들을 만류하거나 제지하려 드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어 횡액을 자초하기 싫은 것이지요.     


“살려줘, 살려 주세요!.”

희미했지만 분명한 소리였고, 늦은 밤의 어둠과 정적이 구해달라는 피해자의 소리를 증폭하여 아내와 함께 잠들지 않았던 L행정관의 귀에 들려온 소리였습니다. 아파트 사람들이 요이 똥하고 동시에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면, L행정관의 귀에 들렸던 그 소리는 아파트 내 다른 사람들의 귀에도 잠입했을 터. 소리에 반응한 누구도 없었으나 L행정관의 본능만이 그에 반응했습니다.


생각할 겨를 없이 뛰어나간 L행정관의 눈에 한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위험한 흉기 칼. 그 칼은 이미 여성의 몸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미처 칼까지는 예상 못한 L행정관은 잠시 주춤 했으나 물러서기엔 L행정관의 의기가 용납지 않았습니다. 칼에 찔린 여성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두어 남자가 여성에게 계속 칼을 휘두른다면 여성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L행정관의 본능은 이를 막아야 한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멈춰, 그만해!”

두려움은 의기를 넘어설 수 없었고, 자신의 위험은 의기 안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는 막아야겠다는 생각만이 먼저였습니다. 자신은 검찰에 근무하는 검찰직원, 눈앞에 범죄현장을 두고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지요. L행정관의 제지에 놀란 남자는 도망치기 시작했고, L행정관은 본능적으로 도망치는 남자의 뒤를 쫒았습니다. 도망치던 남자는 더 이상 도망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들고 있던 칼 휘두르며 행정관을 다가서지 못하게 했고, 남자와 행정관의 대치는 30분가량 계속되었습니다.


L행정관을 뒤 쫒아 따라 나온 L행정관의 아내가 피해자를 보살피고 있는 동안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L행정관과 경찰의 공조로 남자는 결국 체포되었습니다. 피해 여성은 여러 군데 칼에 찔려 상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중상은 면하여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L행정관의 제지가 아니었다면 남자의 흉기에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나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아파트단지에 들려왔던 ‘살려줘’라는 비명소리에 응했던 사람은 단 한명, L행정관이었습니다. 아파트 그 수많은 사람 중 유독 L행정관에게만 그 소리가 들렸을까. L행정관이 소머즈의 초인적인 귀를 가진 것도, 진돗개만큼 탁월한 청력을 가진 것도 그리고 개띠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깨어있던 주변 아파트 사람들에게 모두 들렸을 소리였으나 뛰어나가는 의인의 행동은 L행정관에게만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한 누군가는 소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누군가들은 창문으로 내려다보며 애먼 발만 동동 구르며 숨어 있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아파트 안에서 발을 구른들 남자가 들었던 칼이 호박으로 변하지는 않을 터. 누군가는 나가서 호루라기라도 불러야 했을 일입니다. 의인의 행동은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옳은 일이 칭찬을 받는 세상이 정상인 세상은 아니지만 행동을 하지 못하는 범인들은 의인들의 의기를 높이 사고 고마워 라도 해야 할 밖에요.      


전 요의와 배고픔, 술고픔은 참지 못하나 불의(不義)는 아주 그리고 매우 잘 참습니다. 길거리에서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워도, 검사가 변호사의 청탁을 받아도, 그 순간 갑자기 잘 보이던 시력과 잘 들리던 청력이 기능을 잃은 듯 자리를 피하거나 기록에 몰두합니다. 한음 이덕형은 자신의 허물을 듣는데 즐거워하고 의로운 행동을 옮기는데 용감해야한다 했다는데 허물을 들음에 기분상해하고, 의를 행함을 두려워하니 아무래도 전 평범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여, 행동을 주저 않는 의인들이 부럽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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