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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Apr 07. 2020

형님 전 상서

13년전 세상을 떠난 선배 수사관에게 드리는 편지

형님! 형님이 가신지 13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리 먼저 가셨는지, 13년이면 그쪽의 급한 일도 얼추 마무리 하셨겠네요. 저도 이제 형님이 가셨던 때의 나이를 훌쩍 지나 어느 정도 시간 여유 있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형님이 가시기 전 맡았던 딱,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네요. 가시고 나서 이곳 검찰이 그리고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시죠? 그럴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쓸 생각을 했습니다. 형님 생전에 궁금한 것 못 참으셨잖아요. 성질이 급하셔서 하시고 싶은 말보다 “야, 자식아!”가 먼저 나왔었는데, 여전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1층 105호실입니다. 떠나시기 전 형님이 근무하셨던 바로 그 사무실입니다. 1층에 내려와 근무를 하다 보니 25년 전인가, 제가 아직 3년차 풋내기 수사관으로 근무 할 당시, 우연히 1층에 내려왔던 한 젊은 검사가 웃으며 저에게 던졌던 물음이 생각납니다. 형님도 아시는 검사인데 요즘 변호사로 TV에 자주 나오더군요.

“이 자리에서 저 자리까지 몇 년 걸려요?”

 ‘이 자리’는 초임 수사관들 자리를 말했고, ‘저 자리’는 수사관들 최고참인 계장 자리를 말했습니다. 지금은 퇴직하신 H계장님 자리 말입니다. 제 자리를 비롯하여 수사관자리는 양쪽으로 4명씩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계장자리는 혼자서 수사관들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거리로 따지면 3미터 정도나 되었을 것입니다. 그 검사는 농담으로 물었고 저도 웃고 말았으나 검사실에서 근무하다 지금 이 자리에 내려와 보니 방향을 달리한 자리로 3미터를 옮기는데 그로부터 25년가량이 걸렸네요. 바로 옆자리로 옮기는데 25년이라니 참 뭐라 할 말을 찾을 수는 없고, 시간은 뭉텅이로 흘러 간 것 같습니다. 15년 전에 청사를 옮겼으니 딱 그 위치는 아니지만 부서의 구조는 그대로고 보직 또한 그대로니 검사의 물음이 생각나 피식 웃게 됩니다. 20대 후반의 풋풋했던 얼굴은 이제 저도 흰 머리를 염색으로 감춰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25년의 세월을 팔아낸 대가로 이 자리에서 또 다른 젊음들을 보고 있네요. 이 젊음들도 저 자리까지 몇 년이나 걸릴까, 하는 생각을 할까요? 



검찰수사관이라는 직업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려냈습니다. 가끔은 뿌듯하게 한편으론 민망하게, 때로는 오만하게, 그리고 어떨 땐 정의롭게, 그렇게 지나온 검찰청에서의 시간들을 이제는 꾹꾹 뭉쳐서 가슴속에 담아두고, 조금씩 편린으로 꺼내어 심심풀이 글 소재로, 그리고 호프집의 술안주로 내어놓고 있으니 더 이상 뭉쳐 담을 검찰의 시간은 제게도 이제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28년 전의 청사는 매화가 제일 먼저 핀다는 매곡동이었잖아요." 

청사는 좀 낡고 허름했지만 청사 주변으로 벚꽃이 꽤 예뻤고 뒤편 마을 골목엔 홍매화 거리가 또 다시 예뻤지요. 도로 하나를 건너 옆에 대학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어서 봄이면 햇볕과 함께하는 산책로로 그만이었습니다. 형님과 같이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가기도 했고요. 생각나신가요? 지청장 관사를 지나는 청사 후문을 나서면 ‘낭만’이라는 어설픈 호프집이 퇴근길을 막았고, 그곳에선 형님을 비롯하여 선배 수사관들의 영웅담이 술값과 함께 부풀어 가곤 했었지요.

가끔 그리고 때로는 자주, 검사들 지갑의 소유권이 선배 수사관에게 넘어가기도 했고, 선배의 손에서 후배의 주머니로 옮겨지기도 했었습니다. 가게 이름처럼 ‘낭만’이 넘쳐, 위장은 맥주와 북어포로 인해 넝마가 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허름한 청사도 낭만도 세월처럼 사라져 갔습니다. 아마 지금 문구사로 바뀌었을 겁니다. 그 옆에 사진관은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우리 청 행사 모습을 전담으로 담던 그 작은 체구의 사진사님은 백발의 노신사가 되어 있더군요.


그 시절 호프집 ‘낭만’에서 영웅담을 펼치던 선배들은 이미 돌아가신 분도, 아직 정정하게 법무사를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끔찍하게도 후배들을 챙겼던 그분들을 잊기는 어렵네요. 형님도 그 선배 중에 한분이셨는데,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바뀌어 저는 형님과 그 선배 분들처럼 후배들을 챙겨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문화가 바뀌고 술자리 문화가 바뀌어 술 한 잔 하자는 말이 갑 질이 될 수도 있으니 술 먹자, 밥 먹자는 이야기도 망설여집니다.


날로 삭막해져가는 직장생활에서 저 앞에 앉아 있는 후배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변해가는 검찰조직의 현실이 저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주고 있는지, 제가 지나온 근 30년의 세월과 그 적지 않은 세월이 준, 불과 3미터 거리의 저 자리에서 저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목표로 견뎌낼 것인지, 가끔은 궁금하고 때로는 안타까워서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강박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의 업무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예전과 달리 수사를 회피하고, 승진에 목을 매는 그들의 모습에서 검찰이라는 조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속마음이 보일 때면 선배로서 부끄럽고, 조직을 끌어갔던 앞선 자들이 못 마땅하기도 합니다.      


형님도 그곳에서 내려다보시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근래에 검찰과 경찰사이에서 수사권조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수사권이라는 것을 조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만 여하튼, 용어는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원래 모든 수사의 주재자는 검사였잖아요. 그 모든 수사의 주재자로서의 검사가 빠지고 경찰에 단독적인 수사권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수사지휘권이 사라지고 불기소에 해당하는 사건의 종결권도 경찰이 갖게 되었지요. 이로 인해 검찰이, 아니 법무부와 검사들이 시끄럽지만, 피해자일 그리고 수익자일 국민들의 의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개혁대상이라는 검찰조직의 일원인 수사관 등 직원들의 업무와 처우가 어떻게 변할지 우려가 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수사관의 정원축소가 필요하면 법무부 산하 다른 조직으로 가면 된다는 세상 무책임한 소리도 하더군요. 보일러 수리공에게 전기수리 하러 가라는 격이지만 차츰 시행령을 만들어가면서 검찰수사관들의 위치도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 믿어 봅니다.


검찰청엔 검사 외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음을, 풋풋하게 들어오는 신규 수사관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직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자랑스럽게 수사관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선배 수사관이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검사 뿐 만 아니라 검찰수사관도 응원하는 날이 오도록, 그런 꿈이라도 꾸어 볼입니다. 후배들은 묵묵히 일을 함으로써, 저는 이렇게 형님의 응원을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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