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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06. 2020

하도급 받은 곰

아무리 마늘을 많이 먹어도 곰은 여자가  되지 못한다. 속만 쓰릴 뿐.                         


<단군신화>에서 마늘만 먹고 100일 만에 사람이 된 곰은, 인내심이 쇠심 줄 만큼 강한 놈이라고 합니다. 마늘만으로 100일을 버틴 것 보면 그럴만합니다. 가락국기에서는 신성한 분으로, 설화·민담에서는 미련하거나 변신능력이 있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쓸개는 진통제나 강장제로, 고기는 맛이 없으나 모피는 방석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하도 많이 이곳저곳에서 불러다 사용하다보니 불쌍한 동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고 하네요. 마늘만 먹고 겨우 사람이 되었는데 결국에는 불쌍한 동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마늘을 좋아 하여 가끔 식사 때 생마늘을 씹어 먹기는 합니다만 100일간 마늘만 먹을 만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저는 사람이니 굳이 마늘만 먹고 살 생각도 없고, 여자로 변신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팔다리를 묶어놓기 전에는 그만한 인내심도 없습니다. 미련하지 않을 자신은 없으나, 소주 댓 병을 앉은자리에서 마시기 전에는 변신능력도 없으니 신성한 놈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하여 저는 곰이 될 수도, 일리도 없습니다.  

한데, 가끔 제가 재주부리는 곰이 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십 수 년을 검사실에서 수사를 담당했습니다. 검찰청의 수사라는 게 형사 콜롬보나 셜록홈즈 처럼 기발함과 참신함으로 범인의 트릭을 깨뜨려가는 스릴이 있는 것도 아니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명탐정 코난식 수사도 아닙니다. 경찰송치사건은 기록을 파악하여 피의자에 대한 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 업무고, 검찰 직접 인지사건은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찾아내는 것과 자료를 근거로 다시 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검찰의 수사입니다. 결국 검찰청의 수사는 조서작성이 관건입니다. 검찰 수사팀 하면 영화 공공의적이나 내부자들처럼 뭔가 폼 나고 스펙터클한 수사가 전개될 것 같지만 검찰청의 모든 수사는 피의자신문조서작성, 참고인진술조서 작성 등 조서작성이 핵심입니다. 몇 시간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로 타자를 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서작성이 없는  검찰의 수사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팥 앙금 없는 찐빵이지요.      


사건을 건설공사에 비유 해보겠습니다. 검찰의 사건은 검사가 원도급자, 수사관은 검사로부터 하도급 받는 하도급자입니다. 물론 검사도 발주처로부터 사건을 도급 받은 도급자입니다. 발주처는 국민이겠지요. 하도급 받는 절차를 말씀드려볼까요.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기록은 사건과 접수 담당자가 취합하여 기다란 배당 탁자에 올려둡니다. 배당 탁자에는 각 검사들의 명판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준비를 마친 접수담당은 배당권자에게 보고하고, 배당권자는 배당을 위해 배당탁자 앞에 섭니다. 주로 차장검사나 부장검사입니다. 쌓인 사건기록을 각 검사 명패 앞에 균등하게 배분합니다. 


짬밥은 많이 받는 놈이 복이지만 기록은 그 반대입니다. 쌓인 기록의 높이를 대충 보거나 기록 권수가 어디가 더 적은지를 나락 수매하듯 간을 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막노동판에서 십장이 일감 던져주는 식이지요. 배당이 결정된 기록은 수레에 실려 각 검사실로 배달이 되고, 검사실의 검사는 대략 검토 후 수사관에게 다시 일정 기록을 배당합니다. 하도급입니다. 원도급자가 검사, 수사관은 하도급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사관에게 배당되는 기록은 조사가 필요한 기록입니다. 경찰의 조사만으로 증거자료가 충분하여 조사가 필요치 않는 사건은 검사가 직접 곧 바로 처리합니다. 대부분 벌금을 구형하는 약식사건이지요.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건을 검사로부터 배당 받은 수사관은, 기록을 검토하고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거나 필요한 사람을 소환하여 조서를 작성합니다.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진술조서작성이 그것입니다. 수사관의 주 업무입니다. 이 조서작성이 마무리되면 수사관은 기록에 편철하여 검사에게 넘기고 검사는 이 조서를 토대로 기소와 불기소 판단을 하게 됩니다.  


수사관이 작성한 조서는 기껏 작성한 수사관의 이름이 아닌 검사의 명의로 작성됩니다. 모르셨나요? 현실이 그렇습니다. 피의자신문조서 상단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의 사람에 대한 피의사건에 관하여  2020년 모월 모일 모검찰청  호 검사실에서 검사 홍길동은 검찰수사관 아무개를 참여하게 하고 피의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신문하다.     


조서는 검사가 신문한다는 것이죠? 수사관은 조사자가 아닌 참여자로 서명합니다. 실제 조사를 담당한 수사관이 참여자로 등재되는 이상한 구조입니다. 수사관은 조사를 마치면 검사에게 조서를 보냅니다. 수사관이 조사를 했지만 명의자가 검사이기 때문에 검사가 최종 확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 공사는 하도급자가 하지만 원도급자의 명의로 공사는 진행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P건설사가 도급받은 공사를 K건설이 하도급 받아 공사를 하지만 최초 도급받은 P건설사의 이름으로 준공되는 경우와 마찬가지 입니다. P사는 대형업체, K사는 중소형업체입니다. 원도급을 받지 못한 하도급업체는 어느 정도의 이윤을 취하나 실적은 얻지 못합니다. 자신의 명의로 공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도급자인 P사는 K사의 실질적인 공사가 자신의 실적이 되어 이익과 더불어 추후에 대형공사를 수주 할 수 있는 실적을 얻게 되고, 차곡차곡 성장가도를 달립니다.       


수사관 작성의 조서가 검사 명의로 둔갑하여 재판에 증거로 넘어가는 사실은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듯이 검사도, 판사도 대법원장도 알고 있습니다. 불법이면 고쳐야 하지 않는가? 방법은 있습니다. 검사가 모든 사건을 조사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려면 검사수를 지금보다 3배는 늘려야 할 겁니다. 2,000명인 검사를 6,00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말이지요. 검사 1명의 평균 연봉이 1억(정확히는 모릅니다)이라면 지금보다 년 예산 4,000억을 늘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럼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조서 작성권한을 수사관에게 주면 됩니다. 그럼 주면 되지, 그렇게 되면 검사 일도 줄어들고 좋지 않냐구요? 그것도 안됩니다. 검사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와 검사작성 조서의 증거능력의 차이문제 때문입니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어 어떻게 변경될지 모르겠으나, 애초 입법 시 검사 작성의 조서는 신빙성이 있고, 검사 이외의 자가 작성한 조서는 신빙성이 없다는 철저하고 지극히 만연된 검사 만능주의에 비롯된 입법규정입니다.      


그렇다고 수사관 명의로 조사를 하더라도 수사관에게 딱히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검사 명의로 조사가 작성된다고 해서 검사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검사나 수사관들 모두 그렇게 따르고 있을 뿐 입니다. 명백히 편법인 이 현실은 당연히 교정되어야 하지만 수사관에 관한 규정인지라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 검찰청에는 검사 2천 명, 수사관이 6천 명, 그리고 실무관, 행정관들이 2천 명 가량이 있습니다. 검사 외에 8천명이 근무하고 있지요. 검찰청 하면 검사만 언급되는 언론매체 때문에 검찰에는 검사만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검사 외에 직원이 있어도 모두 검사의 비서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검찰청 업무의 70%의 사람들은 검사의 직접 업무와 관련이 없는 업무를 맡고 있어 사실 검사들과 대면할일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검찰수사관으로 근 30여년을 근무한 저도 검찰수사관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직도 혼란스러워 합니다. 검사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존재, 검찰수사관이라고 호칭을 하지만 법에 규정된 정식 직위도 아닙니다. 사법경찰관리로서 검찰청 검사실에서 실제 수사를 하고는 있으나 경찰과 달리 독립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고, 검사가 수사하는 사건의 수사보조자로 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검사실에서 거의 대부분의 수사를 담당하고는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수사의 보조자일 뿐이지요. 


제가 얼마 전 검찰수사관에 대한 책을 출간하면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인터넷에서 ‘검찰수사관’을 검색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나 답변들이 많습니다. 검찰수사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야 검찰수사관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고, 홍보부족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검사 시다바리’, ‘검사 딱가리’라는 표현들에서 대해서는 자괴감을 금할 수 없는 글들입니다.      


대한민국에 검찰수사관 제도가 생긴 것은 약 70년이 지났습니다. 1948년 경찰이 검사를 총살한 사건이 검찰수사관 제도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자료가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고, 검찰에서 검사 외에 경찰과 같은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추정가능 합니다. 다만, 검찰수사관의 신분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을 만들지 않았던 것은 의문으로 남습니다. 물론 검찰수사관 제도를 만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많은 일을 할 것으로 예상 못했을 수 있습니다. 도입 초기엔 단지 검사의 수사에 ‘참여’를 하는 정도나 검사의 지시에 따른 수사 보조 정도로 생각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검찰수사관은 단순한 수사의 보조업무가 아닌 거의 대부분의 수사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검찰수사관의 명확한 신분 규정은 필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직원들이 사용하는 내부 게시판에는 수사관들의 이에 대한 내용의 글들이 수시로 올라오고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수사관들 스스로도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한다는 반증입니다.      


곰은 아무리 마늘을 먹어도 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저도 방법은 모릅니다. 이 글이 논문도 아니니 뭘 어찌 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냥 푸념입니다. 곰 일리 없는 제가 곰이 되어 살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 때면  가끔 생마늘에 깡 소주를 마시게 됩니다. 오늘은 마늘을 듬뿍 넣은 상추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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