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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06. 2020

검사의 정의

검사를 왜 ‘공익의 대표자’라고 했을까?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와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 합니다."    


검찰직원들에게 매년 초에 배포되는 검찰업무일지 앞부분에 인쇄된 <검사선서>입니다. 검찰청 현관에도 액자로 걸려있습니다. 참고로, 검찰수사관 선서는 따로 없습니다.       


<판사선서>를 보겠습니다.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 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 합니다. "    


본 김에 <공무원선서>도 보지요.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 합니다".      


판사와 공무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다고 했고, 검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는 없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사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자 바로세우고자 하는 정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연히 떨어진 동굴에서 만년하수오를 집어먹고,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내단을 집어 삼킨 주인공이 어릴 적 자신의 부친을 자신의 앞에서 처참히 살해한 수백의 상대가문을 가공할 무공으로 일거에 쓸어버리는 무협지의 주인공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악을 처단하는 영웅입니다. 반면에, 주인공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부친을 잃게 된 상대가문의 어린아이 입장은 어떤가요. 주인공이 당하고 주인공이 복수심을 불태웠던 입장과 동일하게 주인공은 다시 살인자가 아닐까요. 애초에, 주인공을 살인자로 보지 않는 독자의 심리는 그 당시 조건에 부합한 공감입니다. 그렇다면 시대적 조건에 부합하여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 주인공의 행위는 항상 정의일까요.      


현실 속에서 정의는 어느 편에 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정의일수 있으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악이요 불의 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는 시각을 떠난 객관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대다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 정의라면 객관적 정의는 꼭 옳은가요? 시대가 바뀌면 정의도 바뀌는 것인가요? 시대적 조건에 맞지 않아 다수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소수의 공감, 소수의 판단은 정의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흙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재심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한 모 검사의 모두진술입니다. 

원심재판에서 15년을 선고 받게 한 검사의 정의와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한 검사의 정의는 서로 달랐을까요? 검사 선서에 포함된 정의(正義)라는 단어의 정의(定義)를 그때마다 법으로 규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검찰에 들어온 지 3년쯤에 수사과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해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 해였으니 검찰에서 선거운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이야기이니 지금의 사정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을 이글을 보시는 분들이 전제해야만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을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검찰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소한 모임까지 수사관을 파견하여 확인하던 시기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지요.


선거가 있는 해에는 공안검사실에서 수사과 직원들을 자주 동원을 하곤 했습니다. 모 당 선거 후보가 모 학교 강당에서 출판 기념회를 한다고 하니 선거법 위반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라, 또는 모 식당에서 학교 동창모임이 한다고 하니 확인 차원에서 나가보라는 등의 지시가 자주 있었지요. 당시 저도 호텔 식당 한 곳을 나가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모 선거 후보가 모임을 갖는다는 첩보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선배 수사관 한명과 함께 지시 받은 식당에 나갔지요. 제가 근무한 청은 소규모 도시의 특성상 검찰수사관들의 얼굴을 아는 외부 사람들이 많습니다. 식당 근처에서 얼쩡거렸으니 당연히 저나 선배 수사관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선거 시기에 선거에 나온 후보가 모임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 선거 지지를 호소하려는 목적이 백퍼센트입니다. 하지만 검찰수사관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아는 바에야 누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겠습니까. 


그날 모임은 있었지만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호소 내용은 전혀 없었고, 선거법위반 내용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현장 상황보고서는 선배수사관이 작성을 해야 했지만 그 선배는 저에게 보고서 작성을 하라고 미루었지요. 그때만 해도 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모임이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보고서에 기재하고 검사에게 보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습니다. 


2 개월가량 후에 아직 초임 수사관인 저로서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법원에서 저를 상대로 구인장이 날라든 것입니다.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구인장이었지요. 내용을 알아보니 그 호텔 식당에서 모임을 주관했던 선거 후보가 선거법위반으로 기소가 된 것입니다. 검찰에서 제시된 증거가 제가 작성한 수사보고서였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전 분명 그 선거후보가 모임을 가진 사실은 있었으나 선거법 위반 사실은 발견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을 했었으니까요. 


기소한 공안검사를 찾아갔습니다. ‘나를 증인으로 채택한 이유가 무엇이요?’ 약간 흥분이 되어 있던 저는 직설적으로 물었지요. 공안검사는 제가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보여주더군요. 보여준 보고서의 99퍼센트는 제가 작성한 내용이었지만 한 문장이 추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선거에 나오니 도와 달라.’ 선거 후보가 식당에서 지지를 호소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공안검사는 저를 쳐다보더니 본인이 작성했으면서도 왜 아니냐는 것이냐며 보고서의 도장까지 확인을 시켰습니다. 경위는 알 수 없었으나 제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분명 제가 작성한 보고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전 컴퓨터에 그때 쓴 보고서가 저장되어 있을 테니 출력해서 가져다주겠다고 했습니다. 


검사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그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법원에 기소되었고, 수사보고서는 증거로 제출되었으니 확인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 항의를 했고, 검사는 건방지다며 축객령을 내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 어린 나이였고, 검사는 저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더 이상의 항의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였습니다. 검사의 말대로 무의미 했습니다. 그대로 검사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인장에 기재된 일자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을 했습니다. 저는 있는 사실 그대로 증언했습니다. 모임은 있었으나 선거법위반이 될 만한 내용의 언급은 없었다는 것이 제 증언의 요지였습니다. 제 증언에 당시 공판을 맡았던 검사가 저를 흘깃 쳐다보더군요. 기소한 공안검사와 재판에 출석한 공판검사는 달랐으니까요. 재판이 끝난 후에도 공판검사는 저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증거로 제출된 보고서의 내용과 다른 취지의 증언을 했음에도, 부르지도 않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공판검사의 의중이 잠깐 의문스러웠지만 더 이상 저를 부르지도 문제 삼지도 않아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선거 후보도 벌금을 선고 받았으나 당락에 문제가 될 만한 액수는 아니었기에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약간의 불만의 있다고 하더라도 검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검찰과 척을 지려는 사람이 없을 때였으니까요. 


이후 우연한 기회에 당직실에서 공판을 담당 했던 검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사유를 물었지요. 검사는 웃으며 이야기 하더군요. 기소한 검사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경미한 사안인지라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증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추가했었다는 기소검사의 이야기였다. 사실 법원에서 수사관을 증인으로 출석시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하더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랬더군요. 그래서 선거법위반 사안은 없었다는 저의 재판정의 증언에도 공판검사가 별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선거법위반은 유죄로 벌금은 선고 되었으니 검사가 무죄평정을 받을 일은 없었고, 선거 후보도 당락에 영향은 없는 액수였으니 서로 문제 삼을 필요 없어 그대로 넘어간 사건이었습니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는 검찰수사관 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경험입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이유이지요. 사실 기소한 검사도 어차피 유죄선고 될 사안이니 확실히 하기 위한 한 줄 추가가 딱히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검사의 사고입니다. 경미한 사건에서의 행위가 중요사건에도 미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 검사의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합니다. 이미 퇴직했을 나이입니다. 

검사의 정의를 언급하다보니 예전 겪었던 일이 되살아났네요. 검사의 정의는 별게 없습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대로만 적용하면 됩니다. 크게 어려울일 없는 정의입니다. 


검사는 무협지의 영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검사는 무사가 아닙니다. 검사는 문사입니다. 검사가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법률에 적용하면 될 일입니다. 검사선서에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를 집어넣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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