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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06. 2020

1등이 맞다고 했어요

 1등의 답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네가 쓴 답도 정답일 수 있다. 그러니 우겨라. 가끔은. <엄마가>

근데 너 몇등이니?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대접받는 시절이었습니다. 아무리 쌈 잘하는 짱이라고 해도 1~2등짜리는 건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밀걸레 자루 10대의 태형에 처해졌지만, 1등이 있으면 대충 넘어갔지요. 참고로, 전 1등은 못해봤지만 담배도 피우지 않았습니다만.        


하루는 수학시간이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에나 독사 한명은 꼭 있듯이 수학선생의 별명은 독사였습니다. 별명의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독종이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독사는 칠판에 수학문제를 적어놓고 학생들에게 풀도록 하는 수업이 많았습니다. 20분가량 시간을 준 후, 한 문제 당 학생 2명을 선택하여, 칠판에 직접 풀이와 답을 적도록 했습니다. 

“10번, 20번 나와서 풀고, 이유를 설명하도록.”


선택된 학생 2명이 나갔고, 서로 답이 달랐습니다. 독사는 각자 풀이와 답이 맞는 이유를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선택된 한 학생이 풀이와 답을 이야기한 끝에 “상현이도 맞다고 했어요!”라며 풀이를 마쳤습니다. 당시 상현이가 반 1등짜리의 이름이었습니다. 20분의 풀이시간 동안, 1등 상현이 칠판에 나온 학생에게 풀이와 답을 사전에 알려준 것입니다. 


독사는 1등을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각자 풀어보고 다음시간에 설명해 주겠다며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따로 문제를 풀어보지 않았습니다. 1등이 맞다고 했으니 그 풀이가 당연히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터이고, 같이 칠판에 나갔던 다른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참고서에 나온 문제도 아니었으니 답을 맞추어볼 정답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다음 수학수업시간에 독사가 풀이해준 답은 1등의 답이 아닌 다른 학생의 풀이가 답이었습니다. 모두 의외의 결과에 1등을 쳐다보았고, 1등은 얼굴이 벌게져 애먼 자습서만 들추고 있었습니다. 교사도 1등이 틀릴 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고, 학생들도 1등의 답이 당연히 맞을 것이라 생각한 결과였습니다. 학생들 모두 자기 자신들보다 그간 1등만 해왔던 상현이를 더 믿은 것입니다.       


사건은 수학과는 또 다릅니다. 단 한건도,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가 발생되는 사건이 없으므로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검찰청의 검사나 수사관들은 자신들이 수사 중인 사건의 혐의 유무와 죄명 그리고 판례유무를 사석에서 문의하고 토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담당한 사건이 죄가 인정될지 아닐지 여부를 주변 검사나 수사관들에게 물어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사건의 경우 혼자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초임 수사관들의 경우 서로 갑론을박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수사 경험이 짧아 쉽게 판단하기 어렵고, 판례를 본 경험도 적기 때문에 선배나 동기 수사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인의 주장이 곧 판사의 선고일 것처럼 침을 튀기며 주장하는 수사관도 있고, 조용히 사안을 듣고 있다가 자기 방 검사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수사관의 경우 자기 방 검사가 혐의가 인정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면 그때부터 그 수사관에게 있어 그 사안은 유죄가 됩니다. ‘검사가 그랬다’가 유죄인 이유입니다. 다른 수사관이 찾아본 판례까지 들먹이며 무혐의라고 해봐야 씨알도 안먹힙니다. ‘네가 검사보다 잘 알아?’가 속마음 일 것입니다. 이는 ‘1등이 맞다고 했으니 당연히 정답일 것이다’라는 심리와 같습니다. 부족한 자존감의 발로입니다. 자신의 의견은 없습니다.       


수사관의 사건 판단에 있어 검사에 대한 신뢰는 매우 중요하고 당연하지만 과하면 수사에 수동적인 수사관이 되는 폐해가 발생합니다. 수사관 자신이 하는 판단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전적으로 검사의 판단에 의존하고, 수사관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스스로 배제하는 경우입니다.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판단하겠지 라는 생각이 수사관의 의견 자체를 스스로 매몰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최종처분은 검사가 하겠지만, 수사관 본인이 진행한 수사에, 판단 자체를 하지 못하는 수사라면 치밀한 수사가 될 리가 없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수사가 완벽할 리가 없겠지요. 검사의 최종판단을 떠나, 수사관도 자신이 담당한 사건의 수사에 있어 자신의 판단이 있어야하고,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수사관에게 적절한 자존감은 사건수사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검사에게 너무 많은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의 판단 자체를 포기하면 수사에 열정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자존감이야말로 검사와 수사관 모두 윈윈하는 토대가 됩니다. 자신에겐 최종 처분권이 없으니 검사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너무 낮은 자존감은 적극적인 수사를 피하고, 나는 검사가 아니니까 하는 핑계를 만들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이 충분하고,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존감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검사에게 일임하고 의존하는 자세는 미흡하고 부실한 수사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수사관의 미흡과 부실을 채워야 하는 검사에게도 짜증나고 힘든 일입니다. 검사를 존중하는 자세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수사관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지나치게 낮은 자존감은 검사나 수사관 그리고 사건관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검사도 만능은 아니며, 검사가 항상 옳을 수는 없습니다. 1등이 틀릴 수도 있으니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풀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를 수도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독사는 이렇게 물었어야 했습니다. “1등의 풀이 말고, 네 풀이는 어떠냐?”라고 말입니다.      


검사 만능주의 사고는 검사들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법만능주의가 검사만능주의를 만들었습니다. 부부간의 사소한 다툼을 수사기관에 고소를 합니다. 스승의 제자에 대한 가르침도 고소라는 것으로 누가 옳은지 가리려 합니다.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의 일까지 검사 앞으로 가지고 갑니다. 아직도 국민들은 조선시대 사또를 찾아가듯 수사기관을 찾습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무책임한 말입니다. 스스로의 일들을 왜 법에게 맡기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국민들이 싫어하는 사법만능주의를 낳고, 검사만능주의를 낳고 있습니다. ‘법없이도 살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그리 되면 저 같은 검찰수사관의 밥벌이가 줄어들까요.      


수사관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너무 낮추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1등이 맞다고 했으니 정답일거라고만 생각하고, 1등의 의견에만 의존하며, 우리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노력은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1등의 답이 항상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가끔은 내가 쓴 답이 정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어떤 문제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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