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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06. 2020

검찰과 법원의 키재기

키 재기는 건강검진에서…. 

그러고 보니 아직 건강검진 안했네.          



어릴 적 친구들과 누가 큰지 뒤돌아서서 키를 비교해보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크게 보이려 몰래 발꿈치를 들기도 하지요. 서로 키재기를 하는 경우는 키가 거의 비슷한 경우입니다. 누가 봐도 키 차이가 확연한 경우는 키재기를 할 필요가 없지요. 키재기를 해서 친구보다 내가 조금 더 크다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키가 약간 크다고 해서 저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사실 운동선수 할 게 아니라면 키가 많이 커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은 먹을 게 많아서 키 작은애 보기도 힘들지만 남보다 작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될 것은 전혀 없지요. 그런데도 굳이 키재기를 하고, 조금만 커도 우쭐해 하곤 합니다.       


법원과 검찰도 키재기를 합니다. 그것도 건물의 높이를 가지고 말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검찰청과 바로 옆에 위치한 법원은 담 없는 옆집입니다. 부지의 위치상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국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건물을 들어서는 위치에서 검찰은 왼쪽, 법원은 오른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검찰건물은 각이 지어 삭막합니다. 테두리만 남기고 음각으로 파내어 회색 물감으로 찍어낸 듯한 썬팅 빛 어둠이 보입니다. 법원건물은 조금 더 둥글고 여유롭습니다. 사면 및 중간에 틈틈이 심어진 둥근 기둥이 날카로움을 덜어냅니다. 이렇게 구분하면 어느 청, 어느 법원을 가도 검찰건물과 법원건물을 구별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법원건물 중앙에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검찰은 법원청사 안에 있는 공판실에서 당장 퇴거하라!!’ 저도 몰랐던 일이지만 필요에 의해 법원 내 하나의  사무실을 검찰에서 공판준비실로 사용하고 있었나 봅니다. 법원에서 뭔가 기분이 상했는지 그 사무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나가라는 요구를 한 것이지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검찰과 법원은 묘한 경쟁심리가 있습니다. 서로 위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아래는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법원과 검찰을 찾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는 일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검찰건물과 법원건물의 높이는 거의 같습니다. 법원과 검찰은 한 장소에 있어야 하므로 건물을 신축할 때 서로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 협의를 해야 합니다. 


들어서는 입구의 도로가 하나일 경우 절반은 검찰이 다른 절반은 법원의 예산으로 따로 따로 공사합니다. 자세히 보면 검찰 쪽 방향으로 들어서는 보도블럭과 법원 쪽 보도블럭이 다릅니다. 대문의 기둥도 모양이 다릅니다. 기회 있을 때 한번 살펴보시면 재밌을 것입니다. 따로 공사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나라의 관공서에서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겠지만 예산의 출처가 서로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유치하고 우스운 일이지만 건물의 높이는 협의를 합니다. 건축 설계를 따로 따로 하므로 정확하게 높이를 맞출 수가 없는 경우에 상대 건물의 공정을 보며 높이를 맞춥니다. 조금이라도 낮게 보이는 경우 벽돌 몇 개를 더 쌓아서라도 높이를 대략 같도록 합니다. 국민들은 생각지도 않을 일이고 관심도 없는 일이겠지만 검찰과 법원은 그런 묘한 키재기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청의 경우엔 층수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게 되자 법원에 가서 양해를 구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높이를 맞추려 쓸데도 없는 헬기 착륙장을 만들었다는 청도 있었구요.      


검찰과 법원이 가끔 체육대회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년 있는 일은 아니나 기관장들이 운동을 좋아하는 경우, 친목 식사자리에서 갑자기 술기운에 성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목은 테니스, 축구, 족구가 대부분이고, 예상 했겠지만 거의 일본과 한국의 승부 게임입니다. 서로지지 않겠다고 무리하게 용을 씁니다. 제가 근무하는 청에서 근래엔 없었으나 예전에는 가끔 있었던 일입니다. 


 예전 검찰은 법원의 조직에 속하여 검사국으로 존재했었습니다. 따로 검찰청으로 독립하면서 서로 대등한 관계라는 경쟁심이 건물 높이까지 지지 않으려는 유치한 심리로 작용한 듯하지만, 얼마 전 언론을 도배한 각 수장들의 비리 경쟁이 문득 생각납니다. 국민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아쉽습니다. 키 재기는 건강검진에서 충분합니다. 검찰이나 법원이나 이제 키는 그만 커도 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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