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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08. 2020

인사에 관한 단상

인사의 종류, 

목례, 배꼽인사, 부복, 오체투지. 안녕!                     



저는 출근을 자동차로 합니다. 집이 도시가 아닌 시골인지라 자동차가 아니면 출근이 어렵습니다. 자동차는 내릴 때까지 폐쇄된 공간입니다. 운전하다 누군가를 만나 인사하기는 로또 5등 당첨만큼 자주 있을 일이 아닙니다. 스위스 신사처럼 먼저 가라 양보인사 하는 운전자가 아닌 바에야 모르는 운전자와도 인사할 일이 없습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은 차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 됩니다. 물론 동승자가 없을 경우입니다. 혼자 운전하는 시간은 대부분 즐겁습니다.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궁시렁 거려도, 흥얼거려도, 껌을 짝짝 씹어도, 손가락을 까닥거려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음악을 듣고 흥얼거립니다.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혼자 흥얼거릴 일은 거의 없지만, 아침엔 김제동의 굿모닝 FM이 선창을 해줍니다. 흥얼거린다는 것은 기분이 좋다는 것이죠. 흥분까지는 아닐지라도 나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청 근처에 도착하면 아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차안에서도 길가는 이가 아는 이라면 인사를 하게 됩니다. 눈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까딱이거나 손을 흔들거나 ‘안녕’하고 소리를 내거나. 그때부터 흥얼거림은 사라집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다중의 세계로 들어서기 직전입니다. 인사는 다중 세계의 일입니다. 다중세계에 들어서는 가장 최초의 관문은 인사하기입니다.       


청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면 다중세계에 들어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쪽에서 직원 한명도 혼자의 세계에서 벗어나 차에서 내립니다. 후배직원입니다. 저는 후배직원을 먼저 봤지만 후배직원은 아직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후배직원이 저를 발견하고 인사를 할 때까지 눈치만 보며 청사 현관을 향해 걸어갑니다. 앞 눈은 허공을 보고 옆 눈은 후배를 주시하며 말입니다. 


인사를 하면 반갑게 받아줘야지. 마침내 저를 발견한 후배직원이 얼른 인사를 합니다. 저는 최대한 여유 있게 선배의 속도로 그리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 줍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근엄한 표정으로 출근하는 국장이 보입니다. 국장은 저를 눈으로만 쳐다보며 다가옵니다. 제가 국장에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국장은 그때서야 국장의 속도로 고개를 천천히 숙이며 인사를 받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모 간부를 만났습니다. 그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그는 저를 봤는지 못 봤는지 정면을 응시하며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세고 있습니다. 그 숫자에 어떤 중요한 수사정보가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머쓱하고 민망합니다. 3층에 들어섰습니다. 복도에 청소아주머니가 아침 걸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걸레질에 방해되지 않도록 한쪽 벽으로 어깨를 붙여 그냥 지나치려는데 아주머니가 저를 발견하고 인사를 합니다. 저는 그때서야 인사를 받습니다. 


‘인사’의 국어사전 상 의미는 마주대하거나 헤어질 때 예를 표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사는 아랫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라는 규정은 국가공무원 인사규정에도 함무라비법전 어디에도 없으나 인사는 대부분 아랫사람이 먼저 합니다. 후배에게 저는 받는 사람이고, 국장에게, 그리고 검사에게 저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고, 국장과 검사는 인사를 받는 사람입니다. 


아랫사람의 뜻은 다양합니다. 나이가 적은 사람, 항렬이 낮은 사람, 지위가 낮은 사람, 신분이 낮은 사람을 아랫사람이라고 칭합니다.(현대국가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하는 인사는 반가움보다는 예의의 표현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하는 인사는 반가움의 표현이거나 정겨움의 표현이거나 친근감의 표시입니다. 반가움, 정겨움, 친근감이 없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건네는 인사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다중세계로 들어서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윗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간단하고 단순한 행위지만 무언가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고 보면 인사의 국어사전상 정의를 바꿨으면 합니다. ‘인사’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건네는 예의라고 말입니다.  


아랫사람이 먼저 하든 윗사람이 먼저 하든 인사를 받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예의든 반가움이 표시든 인사는 의사표현입니다. 자신의 의사표현이 무시되면 사람의 뇌는 감정선을 자극 하게 됩니다. 널 무시하는 거야. 아드레날린을 분비해서 그에 대처해. 이렇게 말입니다. 


예전에 유독 직원들의 인사를 받지 않는 간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좀 심해서 직원들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사를 하는 직원들 일견 쳐다보고 결연한 표정으로 나아갈 길을 갑니다. 지금 중차대한 나랏일을 처리하러 가는 길이니 아랫것들인 너희들에게 인사를 하면 부정 탄다는 각오를, 마음이 아닌 목과 어깨에 심은 것 같습니다. 먼저 하는 인사는 바라지도 않지만 하는 인사를 받지 않는 심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부복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오체투지를 하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간단히 ‘안녕’을 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경추 강화증이나 오십견이라도 걸렸을까. 기관장에게는 거의 요가수준의  유연성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듯싶은데 말입니다. 아래를 볼 수 없는 하맹증이 있을지도 모르니  친구가 안과의사로 있는 병원을 소개해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다중세계로 들어서는 아침 시간에 그를 만나면 그날 하루는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본 것처럼 우울하게 시작합니다. 누구의 말처럼 아니꼬우면 인사 안하면 그만이지만 같은 회사 직원을 만났는데 내 돈 사기쳐간 놈 아니고서야 그냥 지나치기도 어렵습니다. 최대한 적게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소심하게 복수해보지만 기분은 좋아질리 만무합니다. 안보는 게 상책이겠으나 이미 봤는데 안본 눈을 살 여력도 없습니다. 


인사는 한 사람의 하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기분 좋게 시작하는 아침은 하루를 즐겁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간부 승진자에 대한 건강검진을 강화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과 진료 말입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건의를 해야 할 사안일수도 있습니다. 하맹증이 아직 발견되지 않는 중대한 질병일 수 있으니 세계질병본부에 보고하라고 말입니다. 하긴 요즘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이미 치료제가 개발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 어디선가 발견되면 연금공단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인사를 하는데 상대방이 인사를 받지 않는다고 화를 내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몸 상태가 더 나쁜 사람을 만났더라면 화내지 않았을 자네가 마음 상태가 더 나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괴로워하다니, 웃기는 일일세.”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13장, 크세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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