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바이올린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멈추고 정원의 잔디는 초록빛으로 깨끗했다. 단양의 남한강을 아담하게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집. 하룻밤의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꼈다. 펜션에 입실을 하자마자 나는 침대에 벌렁 누웠고 언니는 악기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언니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풍악을 울려라~
-무슨 곡 할까?
마침 창 밖에서 두툼한 강은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구름이 내려앉은 모습 같기도 했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내가 먼저 흥얼거리기 시작하자 언니는 연주를 하며 내 노래를 따라왔다. 오랜만에 불러보니 가사가 물안개 속으로 희미해졌다. 멜로디만 흥얼거리자 언니의 바이올린 선율이 한 발 앞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님이 오시는지’ 한 곡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창가로 가서 물안개를 바라보았다. 말이 필요 없는 풍경이었다. 강물은 흐르고 제자리의 짙은 산을 배경으로 물안개는 꿈처럼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년 만에 만났다. 창가에서 옆에 서있는 언니를 보았다. 염색을 했다더니 흰머리는 눈에 띄지 않았고 파마머리가 가을 단풍의 색깔로 동글동글 말려 있었다. 오십 대 중반만큼의 나잇살도 보였다. 내 마음의 눈에는 언니가 살아온 세월이 저장되어 있고 그 안에는 바이올린이 겹쳐져 있다. 문득 언니를 나의 문장 속에 담고 싶어졌다.
한 집에서 태어나 이십 년을 함께 살았던 자매는 짧은 휴가를 뒤로 하고 이제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각자의 가정과 생활 속으로 돌아간다. 언니는 남쪽의 바닷가 도시로 내려갔고 나는 바다를 건너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물안개 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니에 대한 기억이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내 귀에 남아 있는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서 과거로 향한다. 거기에는 언니 그리고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