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바이올린
바이올린만 파고들던 언니가 돌연 결혼을 했다. 바이올린만 품고 살더니 어느 날 시집을 가야겠단다. 언니 선배의 시동생이 나의 형부가 되었다. 어느 대기업의 대리로 취업을 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키는 언니보다 두 뼘 정도 더 크고 4남 1녀 집안의 둘째 아들이었다. 눈망울이 커다랗고 그만큼 순하고 착해 보였다. 실제 품성도 그러했다. 부부는 닮은 사람들끼리 만난다고 했는데 언니와 형부는 그리 닮은 모습은 아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어려운 형편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과 이제 막 둘 다 취업을 한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신혼집은 단칸 셋방이었다.
이삼 년이 지나자 언니와 형부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언니는 바이올린 레슨 선생으로 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쳤고 형부는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였다. 졸업 후에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지 연세가 지그시 든 선생님께 가끔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형부의 직장이 있는 낯선 도시에서 시립교향악단에 시험을 치르고 단원이 되었다. 언니의 질주를 옆에서 보고 있으면 바람이 일 정도였다.
조카가 태어났다. 갓난아기일 때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았고 임신 전후에도 언니는 레슨을 하며 집안일을 해냈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단체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개인 레슨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밌게 배우는 어린이들 중에는 취미를 넘어 전공으로 마음을 정하기도 할 것이다. 같은 곡을 배우면서도 각자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달라서 옆 친구의 소리를 들으며 선의의 경쟁도 할 것이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되기 전에 언니네는 평수가 꽤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여전히 소형차를 타고 다녔고 가족 모두에게 저렴한 옷을 사 입혔다. 늦둥이 둘째가 태어나자 언니가 일을 하러 간 오후에서 밤까지 형부와 첫째가 둘째를 돌보고 재우기도 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바이올린에 약음기까지 달고서 자정을 넘기며 본인의 곡을 연습했다. 여느 직장여성보다 훨씬 치열한 생활을 하는 언니가 가끔은 아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