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바이올린
언니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40여 년이 되었다. 한눈에 반해서 시작한 악기이지만 여러 단계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바이올린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한 밥벌이도 해야 했다. 가족이 생기고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어깨에서 바이올린을 내려놓지 않았다. 잠을 줄이고 쉬는 시간을 줄이고 차에 바이올린을 싣고 달리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어깨가 아프다고 한다. 올해의 오디션을 보름 앞두고 있어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활을 잡은 오른팔에 통증이 있다. 병원을 다니고 스트레칭을 하는데도 잘 낫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미련은 남지만 시립교향악단을 그만둬야 할까 보다고 했다.
-최연장자가 자리를 비켜줘야 젊은 사람도 들어갈 자리가 생기지. 유학 다녀온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알잖아. 언니야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좀 쉬어.
내가 하는 말이 위로가 될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나는 언니에게 한 마디를 했다.
한 가지 일을 멈추지 않고 평생을 한다는 것. 내가 언니를 높이 사는 이유이다. 음악을 풍부하게 접할 수도 없는 소도시에서 자랐고 바이올린 공부는 지원보다 만류하는 분위기에서도 세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언니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었고 가족들은 서로 도우며 각자의 일을 해나갔다. 포기를 하지 않았고 빡빡한 현실 속에서 항상 꿈을 꾸며 미래를 그렸다. 언니의 삶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가 아니라 일상을 예술적으로 연주한 예술인으로 인정하고 싶다.
어제 오디션을 마쳤다고 한다. 어깨가 좀 가벼워졌다고 하는데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소리로 들린다. 아픈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더 할 수 없을지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커피를 한잔했는데 참 맛있었다고. 삶이라는 거, 예술이라는 거, 참 치열하다. 수고하고 애쓴 사람들에게는 구수한 커피 향이 아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