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우림의 시점
산책길에서 피로시아(Pyrrosia)를 만났다. 습도가 높은 싱가포르에는 가는 곳마다 이렇게 다양한 양치류가 서식을 한다. 한참이나 시선을 붙들린 채 마주 보며 푸른빛을 눈으로 흡수했다. 적도에서의 체감온도가 내려가는 듯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더 깊은 열대의 우림 속으로 발길을 옮기려고 구부렸던 허리를 폈을 때 현기증이 아닌 현기증을 느꼈다. 머릿속을 관통하는 나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삼십 년 전의 학교 도서관!
늦가을이었다. 겨울을 예고하는 찬바람이 부는 날 친구와 강의실을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추위에 민감한 나는 이미 외출복 안에 내의를 입기 시작했다. 가을에 심지어 겨울에도 미니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친구를 보면 따뜻한 그 체온이 신기했고 예쁜 여대생의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 겨울을 지나 봄까지 내의를 입을 정도였으니 쌀쌀한 바람을 막기 위해 귀마개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피해야 할 호동이의 모습이었다. 귀를 양손으로 덮고 도서관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가을인데도 너무 춥다. 사시사철 여름만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
도서관 열람실은 춥지 않았다. 식물이 숨을 쉬면 산소를 뿜어 내듯 책들이 숨을 쉬면 온기를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포근하기까지 했다. 풀이 좋고 나무가 좋고 식물이 좋아서 생물학과에 진학을 했다. 식물 생태학 과제를 하기 위해 관련된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우연히 열대식물 백과사전을 보게 되었다. 한 편 한 편 식물의 사진과 학명 특성 등이 설명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신비롭고 새로워서 책에 몇 시간이나 빠져들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주 간절한 희망사항이 그때 일었다.
‘아, 이 식물들을 야생인 채로 직접 보고 싶다’
졸업을 하자마자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때부터 전쟁 같은 살림살이가 시작되었다. 아들 둘을 한국에서 낳고 봄이 왔는지 가을이 갔는지 육아에만 전념했다. 남편은 퇴근을 하는 대로 매일 달나라로 향했다. IMF의 폭풍으로 젊은 명퇴를 당하고는 천안 서울 평택 안성으로 밥벌이를 다녔다. 영어 공부를 다시 하더니 야간대학원을 졸업하고 뜬금없이 호주로 직장을 구해 먼저 떠났다. 나는 큰 아들을 손에 잡고 작은 아들을 둘러업고 뒤따라 호주로 가서 지내다가 남편은 싱가포르로 이직을 했다.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다시 싱가포르로 발령을 받고 와서 지낸 이후 15년째이다.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점이 있다. 이제는 해놓은 반찬으로 식구들이 각자 밥을 차려 먹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열대의 울창한 숲을 향해 집을 나선다. 일 년 내내 더운 나라에서 야생으로 엉켜 있는 열대식물을 맘껏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무슨 씨앗을 뿌려야 할까 생각하며 걷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