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 쇼트 분석

삶과 사랑의 의미 찾기

by LYN

2020.2.17 "영화다/방" 영화언어 세미나 분석 과제

음슴체 비평을 시도해보았다. 비평과 네이트판의 경계 허물기. 사실은 세미나 당일 오후에 호다닥 작성한 글




영화 <봄날은 간다> 쇼트 분석

: 삶과 사랑의 의미 찾기


1. 몽타주와 클로즈업


클로즈업은 관객수용성을 우선. 한국 멜로드라마에는 클로즈업이 대부분 쓰임. 감정을 드러내며 동시에 감정으로 끌어당기는 그러한 스타일. 반면 몽타주는 상징/ 은유/ 간접의 화법임. 디지털적이며 시적 방향성. 의미 작용의 층위를 확장하는. 몽타주와 클로즈업을 대립되는 이항으로 지형화해볼 수도.* 본 글은 허진호의 <봄날은 간다>가 일반적인 한국 멜로드라마의 기법(관객수용성 중심의 클로즈업)을 따르지 않고 있음에 주목. 영화는 상징과 쇼트의 충돌 즉, 몽타주적 작법을 전유. 그럼으로써 다시, 멜로드라마의 외연과 그 작법이 충돌하며 2차적 의미를 생성. 이때 작법의 변주는 스타일이 아닌, 구조를 통한 서사의 구축을 위함. 영화를 서사 층위가 아니라 구조 층위에서 재독 하면, 영화는 멜로드라마나 진승형(2013)이 칭한 통과의례 서사로부터 확장된 읽기의 가능성을 갖게 됨.


2. <봄날은 간다> 쇼트 구성


영화의 쇼트는 대부분 풀샷으로 이루어졌음. 넓은 바스트 샷 정도가 그다음으로 많이 쓰이는데 클로즈업은 없음.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 순간에도 거울 반사를 이용하는 등 인물의 얼굴- 감정을 프레임의 중심에 두지 않음.


KakaoTalk_20200217_161023366_02.jpg 그림1. 상우가 좋다고 한 사운드를 사용하는 은수. 둘이 서로 마주 보고 히히 웃는데 상우의 얼굴은 녹음실 창문에 비친다.

인물이 부각되는 쇼트가 아니라, 풍경과 인물이 어우러지는. 마치 달력 사진처럼 휙휙 지나가는 듯한 장면들임. 인물이 사라져 안 보이기도 함. 풍경 속에 인물 혹은 풍경에서 특별히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 인물은 ‘자연물’로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 흐름은 인간사의 진행보다 계절의 변화로 인식됨.

중요한 것은, 주인공 상우에 관해 같은 쇼트가 반복됨. 은수를 데리러 가는 장면과 은수의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 대구. 영화 전반과 후반의 아버지와 식사 장면이 대구 되는 등 초반 상우의 공간과 장면이, 후반 상우에게서 반복됨. 이러한 반복성은 풍경화 같은 장면들과 더불어 져, 순환되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시선을 더해줌.

그림2 부쩍 눈빛이 매서워진 상우


그림3 대작해주던 아버지... 이제는 소주병만을 남기고 떠난다...


상우의 할머니는 이러한 반복성의 정점에 있음. 할머니의 공간은 지독하게 반복됨. 치매를 앓는 그는 늘 수색역으로 나감. 할머니는 나이를 먹지만 그 반복만은 멈추지 않고. 죽음 이전에서야, 그는 ‘집-수색역’의 폐쇄된 공간을 벗어남. 그의 마지막 외출은 마치 나들이 같음. 이는 1) 회귀 : 늙은 신체의 마지막이 죽음이 아닌 ‘봄’/ 활력/ 재생으로 돌아감 2) 죽음-해방 : 반복되는 삶의 궤로부터 죽음을 통해 해방됨을 의미.


3. 결론


영화의 이미지와 리듬이 만들어내는 [반복성] [순환성]은 삶의 본질에 맞닿아있음. 영화는 즉, 살아가는 것 혹은 살아지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실존적 고찰인 셈. 그리고 이는 다시 그 외연 의미(멜로드라마)와 어우러져, [삶 속에서 사랑의 의미 찾기] 혹은 [삶과 사랑의 의미 찾기]라는 주제로 확장됨. 상우의 삶과 할머니의 삶, 아버지의 삶, 은수의 삶이 병렬되며 삶의 길 앞에 무수한 사랑과 이별이 놓이는 것.


그러므로 여기에는 성장이나 통과가 없다. 성장과 통과의 서사는 직선적이어야 하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시간은, 할머니의 마지막을 통해서도 주장하듯 회귀적인 것. 직선이 아니라 봄에서 봄으로 청춘에서 청춘 그리고 어쩌면 수색역에서 수색역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곡선.


글을 통해서 허진호 作 <봄날은 간다>의 확장적 읽기를 시도했음. 기존 연구, 읽기는 영화를 사랑 영화 혹은 상우의 성장 영화로만 보는 경향 강했음. 그 원인에는 미시적 접근. 서사 층위에서의 외연적 상징 찾기에만 집중했던 것이 있다고 봄. 본 글은 영화가 일관성 있게 취하는 작법, 구조에 집중해 다시 읽어보았음. 이처럼 텍스트는 무한히 많은 방향과 방법으로 읽을 수 있음. 그래서 본 글에 마땅한 결론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음. 글을 다 읽고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든다면 그 공백은 독자의 몫.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변학수, 채영숙,「몽타쥬인가 클로즈업인가 : 독일영화와 한국영화의 의미구상형식」『독일문학』제 92집, 2004, pp. 31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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