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모 경제 신문의 작년 기사가 추천 뉴스라며 떠있다. 8개월 전 글이 갑자기 왜 뜨는지 모르겠다. 심각한 의미부여는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작은 섬네일 안에 흐리멍덩 노랗게 보이는 게 왠지 아주 환하고 밝은 느낌이라 클릭해 본다. 이건희 컬렉션에 관한 기사로, 거기에 있는 그림 하나를 소개하는 글이다. 그림을 보고 그 아래 붙인 토막글-정보라기 보단 서너 줄의 감상에 가까운-을 보고 번갈아 보고 하다가, 여러모로 분명치 않은 글이지만서도, 이 이야기는 소재가 되겠구나, 내 마음의 은유가 되겠구나 생각한다.
이중섭의 그림 <가족과 첫눈>은 50년대 중반 작으로, 그가 제주도에서 피란살이를 하던 때 함께 맞은 첫눈 기억인 모양이다.
그림을 보면 눈덩이가 푹푹 꼭 무거운 깃털처럼 나린다. 큰 새와 물고기와 이러저러한 몸이 그 눈 오는 세상 아래 꽉 차게 뒤엉켜, 덩어리 져있다. 팔과 날개가, 다리와 꼬리가 겹치고 꼬여있다. 그렇게 엉킨 생명 육체들이라, 어딘가 그로테스크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웬 걸 그림은 되려 발랄하고 살아있으며 그런 까닭에 시적으로 서글프다. 눈은 푹푹 오고, 그들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배경은 이러하다. 1945년 고향에 폭격이 시작되고, 옷가지만 겨우 걸친 채 평안남도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중섭 가족은 제주도가 좋다는 말에 무작정 발을 옮겼다. 순진하고도, 화가다운 발상이다. 그렇게 51년 1월 제주도에 닿아, 52년 여름까지 1년 조금 넘는 시간을 살았다.
그곳에서 부잣집 도련님 아가씨이던 부부는 아이 둘을 먹여 살리기 위해 게를 잡고 물고기를 잡고 소일을 받아 도왔다. 아내가 대개 더 일을 잘했고 키만 큰 화가는 얼떨떨하게 구경했다. 그래도 화가와 가족이 서로 애틋하여, 그때를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했다 증언한다.
이후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그들은 부산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삶이 재개될 것을 기대했으나 전후 풍경은 비참했다. 땡전 한 푼 없는 날이 많았다. 쌀둑 비는 모양이 가슴 명치 갑갑하게 두려운 날이 많았다. 그런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생의 무정한 이치라는 것이 그를 짓누르고 압박했다.
삶이 너무나 궁핍해 죽을 지경에 이르자, 화가는 아내를 친정, 일본으로 돌려보낸다. 아이들도 달려 보내고, 물론 화가 본인도 안 따라갈 이유가 없었으나 수교가 끊겨 그만은 도일할 수 없었다. 그는 혼자 부산에 남아 막노동을 하며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다. 가족들이 좁은 방안에 데굴데굴 엉겨 붙은 모습을 그리고 또 그린다. 게가 기어 다니고 물고기가 파닥대는 풍경이다.
그러던 53년 여름 친구의 도움으로 가족은 후쿠오카에서 재회한다. 중섭이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7일이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항구의 여관방에서 매일매일을 보냈을지 상상하면 마음이 베이는 듯하다.
떠나던 날, 억지로라도 남으려는 중섭을 돌려보내며 장모는 ‘큰 화가가 될 사람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말한다. 그렇게 다 나아질 거다 언젠간 다 같이 살 거다 울면서 엉켜 쓰다듬으면서 헤어진 뒤 56년 중섭은 병원에서 죽어 발견된다.
왠지 가난뱅이 화가가 저 그림을 종이에 꾸덕꾸덕 그리는 모습이 선하다. 하얀 날 스크린처럼 보이던 세상과 나무 그림자, 어린 아기의 작은 손과 발, 바람의 소리와, 찬 공기, 선명한 깨어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을 옮겨 놓고자 한 용씀이 느껴진다. 코가 납작해지도록 맞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랑했노라, 그러한 역사가 번역되어 오는 것이다.
가족과 첫눈 맞은 날을 떠올리면, 화가의 마음에는 큰 새가 날고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벌거벗은 몸들이 땅인지 하늘인지 섞여 있다. 그림 속에는 죽은 첫째 아들도 있겠고 멀리 사는 아내와 둘째 셋째도 저도 있다. 그때 눈 내리는 하늘은 하얗게 뚫려서 높고 멀다.
뜬금없이도, 한 선사인의 삶이 떠오른다. 별의 주기를 알아낸 지성의 먼 조상쯤 되는 이일 것이다. 그는 길어야 서른까지 살 것이다. 어쩌면 그의 생은 이미 저물어 끝나 가고 있다. 아니면 조금 뒤 포식자가 그의 뒤를 덮칠지도 모르고, 다른 무리가 그의 무리를 정복하러 몰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멈춰 서서 광활한 들과 풀과 하늘을 보며 작은 숨을 뱉는다. 그리고는 마음에 오래간 간직 한다. 중섭은,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이의 후손인 탓에 이토록 약하고 여리게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사실이 왜 이토록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누워 생각한다. 겨울이 긴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