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대하여

1-1. 왜 굳이 대학원?

앞 글에서 말했듯이 이 글은 대학원에 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글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대학원에 갈 생각이 있다는 것일텐데 가장 먼저 질문을 던져야한다

나는 왜 굳이 대학원에 가려고 하는가?

대학원에 가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1. 정말 학문에 큰 뜻을 갖고 있어서

2. 취직을 쉽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막상 대학원에 오면 앞의 두 부류에 속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

3. 별 다른 생각 없이

이 세가지 범주 중에 첫번째 범주에 자신이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연 내가 2번이나 3번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한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1번이라고 한다면 내 학부 성적표를 한번 살펴보자. 학부생일 떄 수업에 가면 본인은 학부때는 정말 공부를 못했는데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수가 됐다는 사람들이나, 학부생 때는 놀아도 되고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면 된다고 하는 교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교수님 세대들은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은 교수님들은 당시 시대 상황이 공부를 하게 가만히 두지 않았을수도 있고, 그보다 약간 젊은 교수님들은 당시 우리나라 사회가 너무 잘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학부생 때 공부를 할 필요성을 못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고 교수가 된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매우 소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백번 양보해서 당시에는 학부생 때 공부를 안했어도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 내 작은아버지도 명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할 때 정말 좋아했던 통계학 수업 빼고 나머지는 전부 학점을 깔아줬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원 면접 때 왜 학점이 이모냥이냐는 질문에 통계학이 너무 좋았고 어차피 통계학과 대학원에 갈껀데 굳이 왜 다른 과목을 공부해야하냐고 말하고 실제로 통계학과 대학원을 나와 박사학위를 받아 현재 지방대 교수로 근무중이시다. 근데 여기서 놓치면 안될게 작은아버지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에 몰두하느라 점심, 저녁 메뉴를 정하는게 싫어서 식당에 본인이 오면 주문도 받지 말고 한가지 메뉴만 달라고 하며 먹었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공부할 자신이 있으면 학부 때 학점이 바닥을 쳤더라도 대학원에 올 자격이 된다. 1번에 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1번이라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와서 공부 외적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메뉴를 고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겠다면 진짜 1번이기 때문에 대학원에 와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럼 이번에는 2번에 대해서 살펴보자. 보통 2번은 이공계 학생들이 선택할꺼다. 그리고 그렇게 2번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석사과정으로 입학을 한다. 실제로 각 대학에는 거의 취업을 알선해주다시피 하는 연구실들이 있다. 교수님이 회사 사외이사시거나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인해서 사람이 매우 많고 그 연구실 출신들이 취업이 매우 잘되는 연구실들이 있다. 차라리 아예 학문에 대해서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1도 없고 오로지 취업을 위해서 2번에 오는 사람들에게 대학원은 좋은 선택이다. 요즘같이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 물론 석사를받는다고 무조건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못해 1년 노는 것 보다는 빠르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2년만에 석사를 받고 취직하는 것이 오히려 내 인생을 놓고 보더라도 이득이고 취업을 할때도 이득이다. 인생을 놓고 보면 석사 학위가 남고, 혹시나 나중에 회사에 가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서 박사과정을 보내줄 수도 있고, 회사에 따라서는 월급을 일반 대졸 사원보다 조금 더 주는 경우도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당연히 학부 졸업생을 뽑아 교육시킬바에는 조금이라도 실험 장비나 논문도 읽어본 사람이 좋고, 회사생활에서도 2년을 인정해주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해보면 느끼겠지만 박사과정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지만 석사과정은 대부분 2년에 끝내준다. 오히려 석박사통합과정으로 입학했다가 마음이 변해 석사전환을 하는 경우에는 졸업이 한학기에서 일년정도 늦춰질 수 있다. 물론 석사과정만 하면 2년을 인정받아서 사원 3년차로, 박사과정 졸업자의 경우에는 과장급으로 입사하는게 대부분이지만, 석박사통합과정은 5년은 커녕 6년에도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 대학원 기간동안은 엄청나게 박봉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석사 후 취업의 2번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장 위험한게 3번이다. 사실 내가 1번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3번이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위에서 말한 작은아버지와, 공부를 정말 좋아한 모범생이었지만 석사과정밖에 마치지 못해서 그게 인생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런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대학원은 무조건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보니 내가 공부를 좀 잘했고, 아니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그나마 공부를 제일 잘했고,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고, 부모님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고자 하지 않는 효자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원은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렸을 때 부터 무식하게 외우는거 하나는 자신있었는데 다행히 우리과 교수님들은 그런식으로 시험문제를 내셨던 덕분에 학부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나에게 학부에서 하는 공부와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는 다르다고 하셨지만, 학부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대학원에 가서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대학원에 진학했다. 나는 딱 1번이라고 생각한 3번이었다. 한번도 내 자신에게 내가 왜 대학원에 가야하는지 물어본적이 없었다. 심지어 4학년 때 한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면서 공부가 너무 재미 없었는데, 나는 그게 단순히 이 분야가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재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 갑자기 그 공부가 너무 재밌어질 것이라는 개소리를 하면서 다른 분야를 찾았고, 결국 그 분야의 대학원을 왔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 재미 없는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정말 크게 대학원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나 말고 내 주변에 많았다. 우리 연구실에 있는 후배 중에 한명은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GPA 변환점수가 거의 98점에 이를 정도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과탑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왔는데 별 고민 없이 학부 때 공부를 잘했으니까 대학원에 와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고 한다. 이 후배 또한 대학원에는 왔고, 잘하는건 공부밖에 없는데 과연 다른걸 선택할 수 있을까 고민을 엄청 많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그런 고민을 접고 열심히 다닐 생각이라는 얘기를 해줬다.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나는 대학원에 가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위의 글들에서 말한 것처럼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이다. 만약 진짜 1번이라면 당신은 꼭 대학원에 와야한다. 그게 당신 인생에도, 우리나라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대학원을 와보면 이런 사람들은 절반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2번이라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연구실에 따라서는 석사과정은 입학을 받지 않는 곳도 있으니까 잘 봐야하고, 실제로 그 연구실에서 얼마나 취직을 잘하는지도 확인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1번인 것 같은 3번이라면, 아니면 그냥 3번이라면 잘 고민해봐야한다. 3번은 때에 따라서는 1번이 될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고민은 대학원에 입학해서 하면 너무 늦는다. 꼭 입학하기 전에 내가 3번인지 생각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