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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리닝소년 Sep 02. 2020

대학원에 대하여

2-3. 과제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들어와보니 이전에 썼던 글이 거의 한달도 더 전에 써놓은 글이었다. 약 한달동안 매 순간이 바빴던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나를 바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과제'였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보통 숙제라는 표현보다는 과제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대학생 때 했던 과제가 보통 교수님들이 '어떤 연습문제를 어디까지 풀어와라' 하는걸 말했다면 대학원에서,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말하는 과제는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대학원생들에게 과제는 보통 학교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 연구실에 금액을 지원하고 그 안에서 다른 기관이 원하는 무언가를 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과제의 종류는 여러가지다. 대표적으로는 회사에서 연구실에 금액을 지원하고 합의한 실험을 하면서 회사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얻어가는 산학 기업 과제가 있고, 회사가 아닌 정부 각 기관들 또는 국가의 여러 연구소와 함께하는 과제도 있을 수 있다. 


  앞선 많은 글에서 연구실은 정말 연구실 by 연구실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장담은 해줄 수 없다고 말했었는데 과제도 정말 과제 by 과제다. 어떤 과제는 과제를 준 주체에서 큰 관심이 없거나 원하는 목표가 크지 않은 경우 과제는 정말 편하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과제를 준 주체에서 매우 큰 관심을 갖고있다거나 큰 기대를 갖고있을 경우, 원하는 목표가 정말 클 경우에는 과제가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 또한 매우 운이 좋게 내가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 주제가 과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있어서 내 연구를 하면서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 정말 베스트이겠지만, 내가 하는 연구와는 전혀 쌩뚱맞은 주제를 가지고 과제를 진행할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그냥 해야된다.


  과제 by 과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과제는 일단 내가 어떤 연구실에 속해있는지, 내가 하는 과제가 어느 기관의 과제인지, 한 회사 안에서도 내 과제 담당자가 어떤 사람인지 등에 따라 너무 많이 그 난이도가 달라진다. 먼저 '어떤 연구실에 속해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는 내가 속한 연구실의 교수님이 과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가 중요하다. 교수님에 따라서는 회사에서 하는 과제를 정말 충실히 하고, 과제의 업데이트 상황들을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그 과제의 진행 방향을 체크하고 여러 부분에서 새로운 것들을 제시하는 교수가 있다. 이것은 물론 교수님의 성향에 크게 좌우되긴 하지만 교수님의 위치와도 관련된다. 주로 신임교수나 어린 교수들은 회사에서 과제를 따내려고 정말 제안서도 열심히 쓰고(물론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이 쓰긴 한다.) 과제를 하게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교수도 있다. 그와 반대로 교수가 한 회사와 과제를 오래 해서 그 회사와 아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놓는 경우나 아니면 회사에서 과제를 담당하는 이사와 이미 아는 사이인 경우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과제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 교수들도 있다. 주로 나이가 조금 있으신 교수들은 이미 한 회사와 과제를 한 기간도 오래되고, 과제 뿐만 아니라 산학과도 같은 여러가지 일들로 이미 회사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교수들 중에는 과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수들도 있다. 


  두번째로 '내가 하는 과제가 어느 기관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과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크게 정부, 정출연, 회사 세곳에서 진행하게된다. 이 안에서도 과제 by 과제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부과제가 가장 까다롭고 회사 과제가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다. 정부 과제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 매우 적기 때문에 절대 그러지 않기를 빌지만 혹시나 나중에 내가 정부과제를 하게 된다면 얘기해보도록 하고 회사과제에 대해서 좀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회사과제는 말 그대로 회사에서 연구실에 돈을 주고 회사에서 원하는 사항들을 연구실에 의뢰하는 것이다. 보통은 회사와 학교의 연구실 여러개가 합쳐서 과제를 진행하고, 회사에서는 각 연구실에서 하는 일과 연관된 주제들을 각 연구실에 제시하고 그 안에서 합의점을 찾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경우가 앞에서 말했던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방향과 회사의 과제가 다른 방향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 정말 가끔 외국계 회사와 과제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외국계 회사와는 일을 하지만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부와 같이 과제를 할테지만 정말 가끔 외국계 회사 본사에서 사람이 와서 함께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정말 안타깝지만 회의가 영어로 진행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내 과제 담당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어떤 연구실에 속해있던지 어떤 기관과 과제를 하던지 사실 가장 중요한건 나와 소통하는 과제 담당자이다. 물론 과제에 따라서는 과제를 담당하는 사람이 과제를 통 틀어서 한명이라 (과제는 회사 대 학교 내 연구실이 1 대 다의 형태로 진행된다. ) 내 과제 담당자도 내 과제에 신경을 많이 못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내 과제 담당자는 이 과제를 준 기관에서도 최소한 한명이거나 한 팀은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관계가 그렇지만 이 담당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담당자에 따라서는 본인도 정말 하기 싫은데 억지로 과제를 담당하게 된 사람도 있고 (이게 대다수) 소수이지만 과제에서 정말 무언가를 얻고자 해서 과제 담당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했던 과제는 정말 다행히도 과제 담당자가 좋은 사람이여서 그곳으로 출장을 가서 직접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회의를 통해서 과제의 진행방향을 함께 의논하기도 하고, 내가 직면한 상황에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또한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해놔야 나중에 과제에서 문제가 생겼다거나 여러 문제들이 있을 때 잘 넘어갈 수 있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과제에 대해서 알아봤다. 사실 과제에 대해서는 정말 할 얘기가 더 많지만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이정도로 적어본다. 결론만 말하자면 과제는 연구실을 구성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꼭 해야하는 일이다. 나와 연구실 구성원 누군가의 월급은 과제로부터 나오고, 연구실에서 연구실 돈으로 진행하는 여러 분석이나 시약 주문 등도 과제를 누군가가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니라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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