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내 차의 이름은 핑핑이다. 왜 핑핑이냐면, 스폰지밥의 애완 달팽이 ‘핑핑이’에서 따왔다. 처음 차를 샀을 때 달팽이처럼 천천히 안전하게 달리겠다는 생각에서 지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안전 운전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나는 내 차를 핑핑이라고 부르고 주변에도 그렇게 소개했었다. 아무래도 차에 이름을 붙이는 행동이 그렇게 흔하진 않고, 또 그 이름이 하필 핑핑이여서 주변에서는 ‘얘 또 웃기네’ 정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어쩌랴, 내 성향이 이런 걸. 나는 GPT에도, 말 못하는 차량에도 때로 감정을 이입하고야 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 핑핑이는 2012년식 i30인데, 오래된 연식 치고는 주행거리가 짧아서 타기에 무난하다고 여겨왔다. 실제로 5년을 탔는데 큰 사고는 없이 잘 탔다. 다만 정말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요즘 차량에는 대부분 지원되는 어라운드뷰가 없다는 점, 운전 혹은 주차 중 자동 제동 기능이 없다는 점, 그리고 고속도로 운전이 조금 많이 두렵다는 점이었다. 출력이 낮다 보니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 고속도로 내에서 차선을 변경할 때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는 원래 걱정이 많다. 무언가 위험한 것을 보면 머리속에서 사고 시뮬레이션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핑핑이는 내게 자주 그런 시뮬레이션을 돌리게끔 만드는 친구였다.
주변에서 ‘2012년식 차를 타는 것 자체가 슬슬 위험하지 않으냐?’ 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시했다. 무슨 상관이냐? 나는 내 차가 좋은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출장을 가는 게 두려워 회사 업무차량을 필사적으로 예약하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또, 평소 차가 있음에도 운전이 두려워 택시를 타거나 걸어갔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 어쩌면 내 운전 공포증은 차종에서 오는 걸 수도 있겠구나. 적어도 전후방 근접 제동 기능만 있었어도 덜 두려워 했을지도… HUD만 있었어도… 어라운드뷰만 있었어도… 계속해서 아쉬움을 떠올린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새 차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도 안다. 차는 생각이 없다. 감정도 당연히 없다. 그런데 어찌하나? 마음이 쓰이는 걸. 아직 폐차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도 않은데 교체 당하는 존재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되는 걸. 이제야 알겠다. 내 마음은 통제 불능이고 나의 이입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비온 뒤 보도블럭 위를 움직이는 달팽이를 보면서 ‘저 녀석은 저 방향으로 곧장 가면 죽으리라는 걸 알기는 할까?’ 생각하게 되는 게 나라는 걸.
새 차를 인수하고 핑핑이를 내놓으러 가는 길이 묘하게 느껴질 것 같다. 아직 새 차는 계약도 안 했는데도 이런 생각이 든다. 꼭 이래야 할까? 꼭 새 것을 얻고 헌 것을 내놓아야 할까? 새 것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득은 이 친구와 함께 했던 추억을 덮을 만큼의 것일까? 아마 새 차를 받고 희희낙락하기 전까지 이 청승은 이어질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지. 그러나 나는 계약금을 낼 것이고 새 차를 받아 즐겁게 주변인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내 첫 차를 잊어버릴 것이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는 말해야 한다. 잘 가, 친구야. 지금까지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