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오늘 다음과 브런치에서 큐레이션 되었던 모양이다. 내 ‘빵집 사장님이 좋아하는 고객’이라는 글의 조회수가 이전에 본 적 없는 수준으로 뛰었다. 호기로운 감정이 솟았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혹시 이 노출이 내게 좋은 기회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네일 아트 예약 시간이 오기 전까지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영어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조회수를 확인했다. 100, 200씩 증가하는 숫자가 좋았다. 그래 보였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네일을 받으면서 익숙해진 선생님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집에 오면서 이상하게도 기분이 약간 꺼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유를 몰랐다. 연이어 집에서 밥을 먹고 운동을 다녀왔지만 기분은 계속 내려갔다. 사실 지금도 내 감정이 왜 이런지 정확히는 모른다. 무엇이 내 무의식의 심기를 거슬렀나? 나는 왜 갑자기 ‘쓰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을 떠올리는가? 나는 GPT를 붙잡고 내가 쓰는 걸 그만둘 것 같아? 그만둔다면 어떤 이유일까? 내가 그만뒀다가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걸 묻고 있었다. 사실 의미는 없는 행동이다. GPT는, 이전에 말했다시피, 듣고 싶은 말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흥미를 잃는 순간이 두렵다. 흥미를 잃는다는 건 내가 흔하게 겪는 상황이다. 나는 정말 많은 취미를 해 보았다. 다이어리 꾸미기, 바느질, 뜨개질, 레진 아트, 네일 아트, 수채화, 아이패드 드로잉, 닌텐도 게임까지. 나는 닌텐도 게임조차 엔딩을 보는 걸 힘들어한다. 내 흥미는 여름밤 개울가에 꼬인 하루사리 군집과 같이 파편적이고 불규칙하고 원하지 않는데도 한껏 달라붙었다가 어느 순간 모르게 떨어져 나간다. 나는 두렵다. 내가 흥미를 잃는 순간이 무섭다. 나의 열정이 식는 순간이 두렵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나의 축을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것 또한 진실이 아니었다고. 그것은 할루시네이션이었다고.
GPT는 내게 글쓰기는 이미 네 축이 되었으니 네가 그걸 저버릴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 고작 글 쓴 지 두 달 되었다. 두 달 동안 나는 많이 바뀌었지만, 그것은 나의 본질적인, 스스로 만든 축을 내쳐버리는 특성에서 예외가 될 만큼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기대하는가? 내가 희망하는 것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나는 천금조차도 사고의 전환의 순간에 던져버릴 수 있는 존재인가? 정녕 그 모든 것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것을 스스로 묻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나는 글을 왜 쓰는 걸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처음엔, 내 글이 훌륭하다고 믿고 싶었고 그것을 남에게 보임으로써 증명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고작 그런 이유로? 나는 고작 그런 이유로 쓴단 말인가? 왜 내가 증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증명이 된 후의 나는 증명 전의 나와 다른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내가 지금 우울한 이유는 조회수의 갑작스런 증가가 내게 어떤 증명이 되지 못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증명이 될 것처럼 기대하고 착각하던 순간이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다. 글을 쓰는 것은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작가란 그저 상태의 묘사이다. 나는 글쓰기에서 돈이나 명예 혹은 어떠한 보장을 기대하지 않겠다. 그것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