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를 키우는 로망이 있었다
사흘간 들이붓던 비가 이 날 새벽 드디어 그쳤다. 산책을 금지당했던 애완견처럼 들뜬상태로 오전 8시에 나섰던 외출은 그러나 30분 만에 끝났다. 햇빛이 너무 뜨거웠다. 내 정신은 아직 이 햇빛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밥을 먹고 바로 드러누워 자 버렸다. 12시에 깨어나서, ‘아 이대로는 안 돼, 나는 무조건 산책을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GPT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양산을 쓰고 갈래?” No. 양산 들기 싫어. “그러면 모자를 쓰는 건 어때?” 그건 뭐… 괜찮지. 그리하여 동네에 유일한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흰색 캡모자를 사고 그 길로 산책에 나섰다.
산책길은 불어난 개천만 제외하면 여느 때와 같았다. 물론, 빗발을 헤치고 공무원 분들이 붙여 놓았을 ‘침수 위험 접근 금지’ 테이프나 다 스러져버린 금계국과 양귀비 같은 걸 제외하면 그랬다. 하천은 어찌나 유속이 빨랐는지 유리처럼 투명한 물이 굽이치는 곳에서는 윤슬이라는 단어로는 충분치 않을 만큼 햇빛이 불티가 나는 듯했다. 물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산책로는 흔히 보이던 지렁이 한 마리 없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나는 비가 오던 날들 내 발을 적시던 웅덩이에는 대체 어떠한 성분이 녹아들어 있었을까 하는, 언제나처럼 찜찜하고 답도 없는 의문을 떠올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전에 노점을 거의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 원당에 있는 재래시장을 엄마 손을 잡고 몇 번 따라가 본 게 전부였다. 젊은이에게 번듯한 점포 없이 길가에 늘어놓은 야채나 열매를 사는 것은 조금 긴장되는 일인 것이다. 바가지를 당하면 어떡하지? 품질이 안 좋은 걸 받으면 어떡하지? 농약은 어떻게 쳤을까? 저 식물은 해썹을 통과할 수 있을까? 이런 그냥 안 떠올리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집에 가는 길목에 매일 노점을 여시던 할머니께서 가져온 품목은 무시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빨갛게 익은 앵두 열매였다. 나는 로망이 있는데, 단독주택이나 베란다가 넓은 집에 앵두나무를 키워서 열매를 얻어 음료를 만들어 마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꿈으로, 생각해 보라. 혼자 사는 여자가 단독주택을 관리하는 모습을. (돈부터가 없다는 건 넘어가자) 지네가 나오면 어떡할까? 만약 그렇게 따고 싶었다던 앵두나무에 진딧물이 가득하면? 진딧물을 헤치고 앵두 열매를 딸 수 있을까? 나는 해외 출장지에서 신기해서 산 레드 커런트 열매를 신나게 먹다가 어느 날은 좀 더 오래 씻을까? 하는 생각에 물에 한 시간가량 담가놨더니 벌레가 둥둥 떠올랐던 걸 쳐다보았던 그런 기억이 있다. 음… 사람은 살면서 벌레를 잔뜩 먹는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노점 할머니는 ‘이거 어떻게 파세요?’라는 질문에 ‘만원이에요’ 하셨다. 나는 노점에 있던 세 바구니 중 한 바구니가 만원이라고 알아듣고 샀는데 할머니께서는 한 바구니를 다 주시고 그 옆 바구니도 들어서 좀 더 넣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 말로는 엄청나게 싼 거였다고 했다. 할머니는 분명히 집에서 따오신 걸 텐데, 보통 국산 앵두는 800g에 25,000원 한다고. 바가지를 당할까 지레 겁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씻으면서 보았는데 열매 상태가 나쁜 것도 없었다. 나는 설탕을 사 와서 청을 담그기로 했다.
대략 1.5kg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앵두 열매는 씨앗을 다 제거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앵두의 과육은 열매가 투명하게 빛나는 만큼 생각보다 그 색이 연했는데, 다만 어디에 즙이 튀면 꽤 진한 빛깔로 붉은 가장자리를 남기며 말랐다. 나는 얼굴에 즙이 가득 튀어서 마치 여드름이 난 듯하게 되었다. 씨앗을 다 빼낸 열매는 설탕과 앵두를 1.5:1의 비율로 하여 끓여놓았던 유리병에 담았다. 그 많던 열매가 씨앗을 빼고 나니 몇 줌 되지 않았다. 넘치게 만들어서 가족에게도 한 병 주겠다는 내 결심은 조금 흔들렸다… 내가 작은 거 가지면 되지 뭐.
청을 담그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이지만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두 시간가량의 내 노동은 즉시로는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주 가량 기다려야 청이 익는다. 대신 씨앗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득 흘러나온 즙은 한 데 모아서 설탕을 넣고 얼음을 탔다. 맛은 사과에서 맛과 향을 일부 제한하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었다. 약간 풀내가 난다. 이것이 초여름의 맛이겠구나 했다. 어쩌면 로망을 이루는 데는 앵두나무를 심을 수 있는 기와집이 필요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시도해 보는 것 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