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림

사실은 오래된 꿈

by 구문도

오래 간직한 꿈이 있었다. 단순하지만 어렵다. 바로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다. ‘지속의 어려움’이 내 인생의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욕망은 무려 20년이 넘도록 이어져왔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림을 그려보려는 시도는 인생에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주에 어떤 결심을 했다. 그림 관련한 일로 개인 사업을 작게라도 해서 소액이라도 벌어보자는 것이다. 다만, 직장에 겸업금지가 걸려 있기 때문에 당장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놓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는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기본이 없다. 학창 시절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만화책을 따라 그리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노력은 들이지 않았다. 사실 내 학창 시절은 집-학교-학원의 반복이었다. 변명이지만. 하여튼, 그래서, 새로 연습이 필요하게 되었다. 내가 잘 그리고자 하는 건 토끼 캐릭터이다. 캐릭터 정도이니 제대로 된 해부학에 대한 이해, 색감에 대한 이해, 뭐 이런 건 필요 없고 (혹은 신 포도처럼, 이제 와서 쉽사리 얻을 수 있지 않고) 그냥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토끼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족할 것 같다.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는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다시 불이 붙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림을 이용해서 언젠가는 돈을 벌자는 마음을 먹었으니 이전의 경험들 보다는 계획에 있어 약간 더 구체성을 갖게 되었다. 일단은, 덩어리감부터 잡아야 하니까 하루에 16마리의 토끼를 한 달간 꾸준히 그려보기로 했다. 얼굴은 얼마나 동글동글해야 하는지, 눈은 어디에 붙어야 하는지, 그 형태는 어때야 하는지, 몸통은 얼마나 가늘고 둥글 것인지, 팔과 귀는 얼마나 짧고 길 것인지. AI에게 물어가며 피드백을 받아보았다.


물론 AI들은 ‘노력하면 충분히 될 것 같은 걸?’ 같은 말을 해 주었다. 얘네야 뭐 항상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이 녀석들의 우선순위 중 하나인 것 같으니 더욱 그렇겠지. 근데, 내가 AI를 반년 써보니까, ‘이걸로 뭘 하게?’,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를 해낼 수 있겠어?’ 같은 피드백을 주는 주변 사람들보다 AI의 무식한 응원이 나은 부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가능성에 인색하다. 그 기준에 맞춰야 하니 대기업, 전문직 아닌 인생은 2등이라는 인식이 퍼졌겠지. 나는 그런 인식을 외면하거나 혹은 보란 듯이 무시하기로 했다. 적어도 맞춰서 살아보려는 노력을 9년은 해 보았다. 그것은 내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글을 쓰는 것도, 토끼를 그리는 것도 조금은 겁이 난다. 머릿속에 있는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감이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그린 토끼들은 형태도 일정하지 않고, 선도 삐뚤빼뚤하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가능성은 중독적이다. 노력이라는 거름만 주면 언젠가는 될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런데 나는 나처럼 30대를 넘어선 사람이 늦깎이로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어떤 확률로, 어떠한 속도로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인생을 배우진 못했다. 그래서 펜을 잡아서 토끼를 한 마리 한 마리 그리면서도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할 것이다. 나는 멀리 돌아왔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부럽다고. 부러운 이유는 ‘자신의 사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단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서 남들이 취직에 좋다고 말하는 공대를 졸업해서 이름난 제조업 회사를 왔다. 하지만 돌고 돌아 이제 글을 쓰고 있다. 그림도 그리려고 한다. 어쩌면, 인생에는 힌트가 있다. 주어지는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무의식이 건네는 조언이었음을 알 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이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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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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