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CD 플레이어는 다 죽었나요?
평소 나는 누구나가 그렇듯이 착한 사람이고자 한다. 나이 들어보고 알았다. 세상에 ‘일부러 나쁘게’ 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그 순간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래서 내게 나이 듦이란 절대적인 선과 악을 구분하고자 하는 욕심 자체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체로 의미가 없고, 간혹 있을 때조차도 없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편이 마음을 덜 다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최근에 나쁜 사람이 되는 순간이 한 번 있었다. 돈을 쓰니까 그렇게 되더라. 돈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지지난주 목요일 CD 플레이어를 주문한 이야기이다. 그렇다. 나는 시대를 못 읽는 사람이다. 요즘에 누가 CD를 듣는단 말인가? 근데 나는 듣고 싶어졌다. 한번 듣고 흘려보내기 아쉬운 노래를 불러주는 가수들이 많다. 그러면 나는 그냥 애플 뮤직에서 평소 내던 스트리밍 비용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가끔 CD를 샀다. 그렇게 알음알음 사 모은 CD가 예닐곱 개가 되고 이제는 CD 플레이어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단, 전제가 있는데, 늙어서 청력의 보존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로 듣고 싶었다.
이거는 꽤 장애물이었다. 왜냐면 스피커 기능이 들어간 CD 플레이어가 생각보다 없다. 아니, 있기는 한데, 그 외형이 내 기대 미만이었다. 스피커를 따로 연결하면 되지 않냐고? 그것은 감성이 없다. 탈락드리겠다. 그래서 스피커 기능이 있는 CD 플레이어를 찾았는데, 정말로 진짜로 슬프게도 선택지가 매우 좁았다. 정말 많이 고민을 하다가 (사흘은 GPT에게 짜증을 냈다) 후기의 점수의 표준편차가 큰… 즉, 품질 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 중국제의 CD 플레이어를 샀다. 아… 그리고 운명은 나를 버렸다. 꽝 당첨 되셨습니다. 일주일이 넘어서 도착한 CD 플레이어는 파업 상태였다. 즉, 어떤 동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충전기를 꽂았는데 불까지 안 들어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런 전자기기들은 고전류를 넣어주면 죽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옛날의 출력이 적은 충전기를 써서 충전했는데도, 충전기를 꽂아도 애초에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그 외의 기능이 동작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는 매우 아쉽고 화가 났다. 왜냐하면, 솔직히 그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자 한 게 있었고, 실물을 받아보니 ‘외형이 이것보다 나은 건 없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나는 판매자가 고치는 방법을 안내해 주거나 그냥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줄 것 같으면 이 제품을 여전히 쓰고 싶었다.
그런데, 판매자는 주말이 지나 대답을 주기를 ‘전류를 낮게 쓴 게 확실하니?’ 같은 질문뿐이었고, 그 후 아홉 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는 느낌이 왔다. 이거 배송에 이미 꽤 긴 시일이 소요되었는데 반품 불가능한 시기까지 답변을 질질 끌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열받아서 ‘제품이 전혀 동작하지 않으며, 판매자는 아홉 시간 이상 연락 두절되었음’을 이유로 해서 판매자 귀책의 반품 처리를 신청해 버렸다. 사실 나는 잘 이러지 않는다. 나는 호갱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래야 할 것 같았다. 후기에서 ‘아니, 내부가 텅 비어서 왔잖아요. 장사 이렇게 할 겁니까?’라는 글도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삶의 태도! 지속하게 해 줄 순 없지!
그래서 CD 플레이어를 OEM도 아닌 중국산으로 사 보고자 했던 나의 과감한 도전은 실패로 끝을 맺었다. 아… 반품이야 될 것이다. 네이버가 껴 있으니까. 포장도 왔던 고대로 해 놨다. 트집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슬펐다. 나는 대가로 ‘내 머릿속에서 나온 듯한 형상의’ CD 플레이어를 쓸 수 없게 되었고 대신 국산의 못 생긴 CD 플레이어를 사게 되었다. (아니, 어쩌다 중국산보다도 못 생겨졌단 말인가? 국내 전자제품 업계는 각성하라)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못생긴 CD 플레이어 위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는 걸 고민하고 있다.
내 목소리를 내는 것과 나쁜 사람이 되는 것 사이의 경계는 너무나 모호한 것 같다. 내 권리를 다 찾지 않으면 주변에서는 ‘호구니?’라고 하고, 내 권리를 꼬박꼬박 다 찾으려고 하면 ‘정이 없는’ 것 같다. 그 중간이 답일까? 때로는 자기주장을 철저히 하고, 때로는 물 흐르듯이 넘기는 게? 그러면, 나는 이번에는 목소리를 마땅히 낼 시점에 낸 걸까? 혹은, 내가 판매자를 믿고 좀 더 기다려줬으면 교환이라든지 그쪽에서 자발적인 반품 처리를 진행해 주려고 했을까? 모를 노릇이다. 어쩌면, 나도 나이가 들어서 억척스러워진 것 일지도.
* 연재 일자는 아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못생긴 CD 플레이어를 주문하고 오는 길이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