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쳐 성수 TXTURE SEONGSU
성수동 서울숲길 골목의 한 작은 주택이 건축 디자이너의 언어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그 가게는 2020년 핀란드에서 돌아온 기영석 디자이너의 브랜드 쇼룸 겸 카페 '텍스쳐 성수TXTURE SEONGSU'.
서울숲 풍경을 마주 보며 즐길 수 있는 이곳은 곡선의 스틸 프레임이 특징적인 텍스쳐의 디자인 가구가 한데 모여 공간의 여백을 채운다. 무엇보다 텍스쳐는 앞으로 다양한 창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손에 닿는 건축, 차이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기영석 대표의 디자인 철학이 빛나는 공간이다. 눈 쌓인 서울숲을 배경 삼아 기영석 디자이너와 더 많은 가게의 이야기를 나눴다.
텍스처 성수 대표
가구 브랜드 텍스쳐 TXTURE, 브랜드 쇼룸이자 카페인 텍스쳐 성수 TXTURE SEONGSU를 운영하는 기영석 디자이너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국내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 건축사 사무소 에스오에이 Society of Architecture에서 실무 경험을 했습니다. 이후 핀란드 알토 대학교에서 건축 석사 과정을 밟던 중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020년 핀란드에서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공간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항상 고민하던 것은 건축이 갖는 영역에 대한 것입니다. 건축 프로젝트는 대개 경제적으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시작됩니다. 실무 경험 속에서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아 무산된 건축 프로젝트를 종종 목격했죠. 실제로 회사에서 맡은 첫 프로젝트가 디자인이 다 된 상황에서 예산 문제와 함께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취소되기도 했고요.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언어가 자본과 대지에서 출발하는 점은 건축이 가진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건축이 자본과 대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다만 조금 더 자유로운 관점에서 손에 닿는 건축을 실현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핀란드 유학 시절을 돌아보면 알토 대학교 오타니에미 캠퍼스 내부는 대부분 아르텍 가구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건물보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었죠.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가 실제 생활하는 공간에 필요한 가구와 오브제를 디자인하는 것은 창작자의 언어를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 느꼈습니다. 이를 통해 건축의 영역은 확장될 수 있으며 손에 닿는 건축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제시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텍스쳐의 시작입니다.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는 성수동입니다. 서울숲길 골목에 쇼룸을 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서울숲길 골목은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새로 고치고 바뀌면서 부지의 가격은 오르고 기존의 세입자들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오겠지만 그 안에서 보석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나온 매물을 찾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성수동 어느 한 골목의 작은 주택을 서울숲을 향해 열어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숲의 풍경을 일 년 내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텍스쳐 성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텍스쳐 성수는 창작자의 언어를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서 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카페라는 공간적 문화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작하는 공간은 카페라는 장소적, 문화적 특성을 이용하지만, 이것은 언제든지 다른 용도와 성격의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텍스쳐 성수에 들어서는 순간,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곡선의 프레임이 특징적인 가구들입니다. 의자, 다이닝 테이블, 커피 테이블 등 공간에 놓인 가구들에서 텍스쳐만의 일관적인 디자인 톤이 느껴지는데요. 구체적으로 가구들을 디자인하며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고자 했나요?
현재 사랑받는 다양한 가구들은 근대 디자인의 산물입니다. 그것은 대개 당시의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에 의해서 디자인되었고 지금까지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죠. 텍스쳐는 건축 디자인을 하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여러 건축가 및 공간 디자이너들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먼 미래에도 사랑받는 현대 디자인의 산물을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텍스쳐가 갖는 지향점은 diversity is beauty(다양한 것은 모두 아름답다)입니다. 어느 하나의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 것, 다양한 디자인 언어를 여러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 그것이 텍스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텍스쳐는 '차이'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브랜드입니다.
칸딘스키가 그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밝히듯 원숭이가 사람의 행동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내적 의미를 상실한 외적 모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체에 대한 탐구는 존재의 의미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수반하고 그리하여 본질이라는 실체의 가치는 지적 허영이나 사회적 기준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시대정신과 함께 고유성을 획득하려는 의지를 반영합니다. 즉 창조라는 행위가 더 나아가기 위해 창조자는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며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칸딘스키가 말했듯이 형식의 유사성만을 따르는 창조적 행위는 정신성의 결여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윤형근 화백의 전시에는 그의 생각을 담은 영상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한두 장은 거짓말해서 만들 수 있어도 쭉 계속하다 보면 그 사람의 품위가 나타난다." 이 말은 창조라는 행위에 있어 정신적인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말이 아닐까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시뮬라크르적인 시대를 살아갑니다. 복제된 이미지들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면 원본은 그 수많은 이미지 아래에 묻혀 있고 그렇다면 과연 복제의 복제가 자기 독립성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이런 시대에서 고유성은 어떻게 확보되는지. 창조자는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비트라의 체어 타임즈는 수십 가지의 체어를 한자리에 펼쳐 놓고 탐구합니다. 거기에는 유명한 디자이너의 체어도 있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의 체어도 있습니다. 창조적 고유성은 창조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지표입니다. 그것은 위아래 없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 즉, 범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텍스쳐는 ‘고유성은 곧 다양성이며, 다양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는 것’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텍스쳐의 고유성, 창작자의 언어가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제품을 하나 소개해 주세요.
'ch1'은 텍스쳐가 디자인한 첫 번째 제품입니다. 모티브는 달에서 가져왔으며 '달은 정말 높아 How High the Moon'라는 디자이너 시로 쿠라마타Shiro Kuramata의 제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달은 정말 높아'라는 '과연 저기에 앉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데요. 전형적인 의자의 형태를 띠지만 비물질적이고 투명한 모습이 형태와 기능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텍스쳐의 ch1도 '과연 곡선의 다리로 된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곡선으로 된 다리와 그것을 지지하는 반대쪽 다리로 하중을 분산하는 삼각형 형태의 지점이 생기고 의자는 지지할 수 있는 구조적 안정감을 가집니다. 원형의 좌석과 반원형의 등받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여백은 초승달의 모습을 띠며 아름다운 형태를 완성합니다. 소재는 인체에 무해한 자작나무와 내구성이 좋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루어져 있어 형태와 기능 사이의 간극을 조율합니다.
공간⋅가구 디자인뿐만 아니라 공간 운영과 카페 이용객을 위한 음료 제조까지 모두 도맡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스토어 오픈까지 앞두고 있는데요. 1인 브랜드로서 많은 업무를 혼자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어려움은 없나요?
1인 브랜드가 이렇게 힘든 건지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농담이에요. (웃음) 다만 텍스쳐와 텍스쳐 성수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무엇이든 자기만의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현재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그것들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모든 분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카페와 브랜드를 준비하며 공간, 가구를 디자인하고 메뉴를 준비하는 것까지는 항상 하던 일이었고 도움받을 지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크고 작은 일들은 많았지만, 오히려 쇼룸을 오픈하고 나서 더 어려운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신경 써야 될 일과 처리해야 될 일 사이에 몸이 하나로는 부족한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것들을 차근차근히 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쁘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 그건 언제나 변함없이 감사한 사실입니다. 이런 생각이 바쁜 상황을 심적으로 조금이라도 덜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텍스쳐 성수는 어느새 성수동의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구 외에 음료에도 많은 신경을 쓰실 것 같은데요. 텍스쳐만의 대표적인 메뉴가 있나요?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덕분입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텍스쳐 성수의 대표 메뉴는 티라미수와 아인슈페너입니다. 티라미수는 매일 아침 새롭게 만들며 최상의 마스카포네 치즈와 생크림과 코코아 파우더로 만들어집니다. 텍스쳐 성수의 아인슈페너는 일반 아인슈페너와는 다르게 크림 위에 설탕 층을 얹어 토치로 구워내는 음료입니다. 그래서 크림브륄레처럼 코팅된 설탕 층을 숟가락으로 깨어 먹는 독특한 음료죠.
텍스쳐를 통해 준비 중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은 의미를 향한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지미 카터의 '신념의 위기'라는 연설의 한 부분처럼 우리가 어떤 것들을 소유하고 소비할 때 그 자체에서 의미를 향한 갈망의 해소를 얻을 수 없다면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은 어떻게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의미라는 것은 기준이 다소 불분명하지만, 재화에 대한 소유와 소비의 일차적인 목적이 물질적 갈망에 대한 해소에 있다면, 의미를 향한 갈망의 해소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소비가 물질적 갈망의 해소를 넘어 의미를 향한 갈망의 해소로 이어지는 것을 위해 재화를 디자인하고 판매한다면 그것은 수단이 되고 여러 형태의 사고들을 잇는 하나의 지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물질적 갈망을 해소하여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행태 중 하나로 소비와 소유가 발생했을 때 또 그것이 누군가에게 일상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면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고가 만나는 지점에서 어떤 기획이나 전시 또는 어떤 교육이나 기부가 만들어지고 그리하여 그것들은 디자인적 다양성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텍스쳐는 이러한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TXTURE SEONGSU
운영시간 | 12:00–10:00 pm (월요일 휴무)
주소 |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16-12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