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로 개인전 <FRIENDS FRIENDS>
벚꽃이 만개한 부산의 달맞이 고개. 흩날리는 꽃의 부드러운 연한 분홍색과 울창한 나무들의 푸르름, 그 너머 펼쳐진 바다의 청명함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찬란한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 눈부신 달맞이 고개의 다채로움을 닮은 전시가 고개 한 편에 자리 잡은 갤러리 카린에서 열리고 있다. 바로 이슬로 작가의 개인전 <프렌즈 프렌즈FRIENDS FRIENDS>가 그것.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서로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 시리즈와 작가를 둘러싼 친구와의 관계를 다루는 신작 4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 외에도 울창한 수목과 너른 바다가 내다보이는 지상부터 힙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지하까지 층별로 달라지는 갤러리 공간의 변주를 경험하는 것도 본 전시의 관람 포인트.
이슬로 작가의 작업은 빛바랜 사진처럼 오래된 기억과 경험을 바탕에 둔 탓에 대부분이 선명하지 않다. 마음에서 피어난 다양하고 무질서한 선과 색채가 겹겹이 쌓여 형태를 구성하고, 노랫말 없이 흥얼거리다 사라지는 콧노래처럼 정의할 수 없는 무한한 이미지가 작품에 담겨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심상을 표현하기 위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며 즉흥적으로 화폭을 채워 나간다.
1987년생인 이슬로 작가는 여느 동시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게임, 만화, 그리고 TV 시리즈나 애니메이션처럼 대중문화를 기반한 다양한 미디어 속 캐릭터와 세계관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다만, 이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서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태도가 작품에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연작은 각각이 비슷하지만 뚜렷하게 구분되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과감한 붓질의 흔적은 마치 달콤한 디저트를 연상시키며 시각적 자극 이상의 유희를 관객에게 선사하며 작품 감상의 매력을 더한다.
이슬로의 작품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관계에 주목한다. 단, 그 관계의 대상을 인물로 국한하지 않고 시간이나 감정 등의 추상적인 범위와 함께 사물 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이에 포함하는 것이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작가는 지난 전시들에서 줄곧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관계를 조명해왔다. 2022년 개인전 <천진난만(天眞爛漫)>에서 작가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현재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살폈다면, 이후 진행된 <AMPERSAND>에서는 작가와 자신(개인)간의 관계성, 타인이나 사회라는 프레임을 통해 규정되는 개인과 본성에 의해 정의되는 개인 간의 관계와 균형을 이야기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프렌즈 프렌즈>는 작가의 대표 연작 타이틀이기도 하다. 한 화면에 두 대상이 서로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주로 그려지는 시리즈로, 이 두 대상 간의 관계와 그 사이의 균형을 주제로 하는 작업이다. 주로 하나는 작가, 하나는 다른 무엇이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인물, 시간, 사건, 감정 등 광범위한 영역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를 프렌즈 프렌즈로 설정한 이유는 직전 전시가 작가와 개인 간의 유대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친구와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인물이 대표적이지만 그 외 다양한 대상과도 우애를 다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특히 전시라는 플랫폼의 특성상 관람객과의 관계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지난 전시부터 자신을 대변해 작품 속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존재 ‘로LO’를 등장시킨다. 로는 작가명인 ‘이슬로’에서 작가의 본명을 제외하고 남은 단어이자 개념이다. 로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유일한 성질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작품에서 호흡한다. 로가 작가와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변을 미리 하자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로와 작가의 관계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고 경계 없이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렇게 로는 작품 안에서 작가와 유대하며, 정의할 수 없기에 자유로이 확장하고 무한히 탈바꿈하는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FRIENDS FRIENDS> 전시에 출품되는 이슬로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LO is Everything> 연작이다. 본 작업은 그림과 문자가 한 화면에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모두 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로의 성질 덕분에 무려 26개의 다른 모습을 가진 로가 탄생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가가 관계를 맺어 온 외부적인 요소를 이미지로 상징했다. 특히 각각의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가진 이슬로만의 심상을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람객은 해당 단어에서부터 시작된 각자의 영감과 이미지를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서 볼 수도 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전시와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작가는 자신과 타인, 특히 친구와의 관계를 더욱 조명하고자 실제로 본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과의 공동 작업을 이번 전시에 포함했다.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작가 275C, 김건주, 드로잉메리와 영상,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인 김지원,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만들며 브랜드 툴라툴라해프닝을 운영 중인 강희은, 그리고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 그룹 피그프로그PIGFROG의 멤버 아티스트 오존O3ohn과 주니JOONIE가 바로 그들이다. 이슬로는 이 여섯 명(팀)과 각각 따로 또 같이 작업한 공동 작업으로 친구라는 관계 안에서 보이는 다양성과 균형을 색다르게 선보인다.
관계를 매개로 넓게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시작해 이를 좁혀가며 자신과의 관계까지 살펴보는 작가. 관람객은 그러한 작가의 행위를 마주함으로써 결국 관람객 자신이 쌓아온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본인을 둘러싼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하며 그에 대한 생각과 질문, 그리고 대답을 회화, 설치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하는 작가의 세계는 유쾌하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을까?
한편, 홍익대학교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이슬로 작가는 CARN(2023), PBG(2022), 롯데월드몰(2022), CDA(2022) 등 7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도쿄, 서울, 제주, 분당, 부산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전시는 오는 4월 23일까지.
전시 제목: 이슬로 개인전 <FRIENDS FRIENDS>
전시 일자: 2023년 3월 10일~2023년 4월 23일
전시 장소: 카린(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65번길 154)
문의: 051-747-9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