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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n Jun 29. 2024

수집가 양해남의 한국 영화 포스터 컬렉션

<영화의 얼굴>전

[포스터] 영화의 얼굴 | ©갤러리 에무

디자인계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레트로를 향한 열풍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지금, 레트로 스타일의 근원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영화의 얼굴 - 수집가 양해남의 한국 영화 포스터 컬렉션>이 지난 4월 6일부터 오는 4월 20일까지 ‘갤러리 에무’에서 열린다. 

전시 전경 | ©Kunhee Lee

본 전시는 영화 자료 수집가 양해남이 수집해온 한국 영화 포스터 약 2400여 점 중 1950~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선별, 출판한 아카이브 북 『영화의 얼굴』 출판기념전이다. 전시에서는 책에 소개된 작품 중 24점의 개성 강한 포스터를 만나볼 수 있다. 과거 그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이자 주요한 표현 양식이 된 지금, 각각의 포스터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를 넘어 크리에이터에게 창의적 영감을 선사한다. 

전시 전경 | ©Kunhee Lee

다양한 홍보 매체로 인해 종이 포스터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전시에서 볼 수 있는 1950~80년대 영화 포스터들은 단순한 영화 홍보물이 아닌, 전시 제목 그대로 ‘영화의 얼굴’로서 기능한다. 한 장의 포스터에는 영화의 총체적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흔적이 타이포그래피, 색감 등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때 그 시절의 포스터를 살펴보고자 한다.

춘향전, 감독 이규환, 1955 | ©양해남 컬렉션

1950년대 한국 영화 포스터는 물감을 사용한 회화적 표현 양식이 특징적이다. 특히, 얼굴의 음영을 강조해 배우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은 1955년의 <춘향전>은 당시 한국 영화 포스터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본 작품은 한국 영화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춘향전>은 1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영화계를 일으켜 세웠으며, 그 전까지 국립극장 주변에서 활동하던 영화인들이 <춘향전>이 개봉한 국도극장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는 곧, 한국 영화의 메카인 충무로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임을 의미한다.

전시 전경 | ©Kunhee Lee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에는 급격히 늘어난 영화 제작 편수만큼, 뛰어난 도안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흑백 스틸 컷에 색감을 입히고, 여러 장의 스틸 이미지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 붙인 몽타주 기법이 주를 이룬 표현 기법은 1950년대 중후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인쇄와 촬영 기술 등의 발달과 도안사의 감각 향상으로 인해 한층 자연스러운 색채와 안정적인 포스터 레이아웃이 돋보인다. 


맨발의 청춘, 감독 김기덕, 1964 | ©양해남 컬렉션

한국에 막 상륙한 춤인 트위스트, 청바지와 가죽 재킷 등 수많은 유행을 만들어낸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 포스터에선 앞서 언급한 1960년대 포스터 디자인의 특징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강렬한 색 대비를 통한 시각적 주목성, 안정적인 문자의 배치 등 전보다 한층 높아진 디자인적 완결성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의 얼굴’이라 부를 만하다.

화녀, 감독 김기영, 1971 | ©양해남 컬렉션
바보들의 행진, 감독 하길종, 1975 | ©양해남 컬렉션


영자의 전성시대, 감독 김호선, 1975 | ©양해남 컬렉션

한국 영화의 황금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TV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과 독재정권의 매서운 검열 앞에 한국 영화의 내용과 포스터 디자인은 과거로 후퇴해갔다. TV에 빼앗긴 관람객을 되찾기 위해 영화계는 경쟁 매체가 다루지 못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다. 포스터 역시 여성 배우의 누드를 강조하는 자극적인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 <화녀>,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 등에서 시대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 전경 | ©Kunhee Lee

전두환 정권은 검열에서 신체의 노출 수위를 파격적으로 허용했다. 1980년대 성적인 묘사에 치중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등장한 이유다. 영화의 이미지를 전하는 포스터 디자인 역시 보는 이를 민망하게 만드는 선정적 제목과 카피, 이미지가 넘쳐났다. 한편,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감독들이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권택, 배창호,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등 작가주의 감독들은 한국 영화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 갔다.

전시 전경 | ©Kunhee Lee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 영화 포스터는 큰 전환기를 맞는다. 이전까지의 디자인이 대부분 영화 스틸 컷에 의존했다면, 이 시기부터는 전문 사진작가가 별도로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전문 시각디자이너가 작업하는 포스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겨울 나그네, 감독 곽지균, 1986 | ©양해남 컬렉션

이러한 점에서 1986년, 이미숙, 안성기, 강우석 세 주연 배우의 모습을 초상화처럼 전면에 내세운 <겨울 나그네>의 포스터 디자인은 주목할 만하다. 대학에서 만나 서로에게 첫사랑이 된 이미숙과 강석우, 강석우에게 닥친 불행으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이미숙을 사랑하게 된 안성기. 디자이너는 세 배우의 극 중 캐릭터를 잘 살린 이미지와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컬러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전시 전경 | ©Kunhee Lee

수집가 양해남은 단순히 영화 포스터 이미지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영화의 구체적 내용, 제작진, 출연 배우들까지 관람객에게 상세하게 설명한다. 포스터 한 장을 통해 한국 영화에 관한 입체적이며 깊이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저마다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채운 각각의 포스터가 품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전시장을 찾아보자. 오는 4월 20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만남 <수집가 양해남>이 있으므로 관람에 참고할 것.


기간: 2019년 4월 6일(토) - 4월 20일(토) 

운영 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

장소: 복합문화공간에무 B2 갤러리 |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입장료: 무료

기획: 사계절출판사

진행: 임수미 큐레이터, 황무늬 인턴 큐레이터

자료 제공: 갤러리 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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