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에 생산된 지우개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
1980,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전시가 지난 2월 22일일부터 오는 3월 27일까지 홍대에 위치한 셀렉숍 오브젝트에서 열린다. 전시의 소재로는 조금 낯선 ‘지우개'가 주인공인 <지우개 전성시대>展이 바로 그것.
그 많던 지우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본 전시를 기획한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문구계의 영원한 조연 지우개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8, 90년대 어린이들의 책상 위에서 화려한 존재감을 뽐내던 형형색색의 지우개들. 전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린 지우개에 대한 추억을 다시금 살려낸다. 그렇게 복원된 이야기는 지우면 사라지고 마는 그것의 존재감처럼 가볍지는 않다. 작은 고무 안에는 그 시기의 유행,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관람을 위해서는 관람객의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 전시대 측면의 둥근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지우개에 대한 간단한 노트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 캡션의 내용은 사뭇 진지한 동시에 글쓴이의 유머러스함도 돋보인다.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 아래 전시장에서 만난 지우개 이야기 일부를 살펴보자.
19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생산되고 있는 국민 지우개 ‘점보 지우개’를 전시의 시작에서 만날 수 있다. 간결한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데 그 가치는 국민펜 ‘모나미 153’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위 사진 속 지우개는 1980년대 초반 생산된 ‘움직이는 눈알 지우개'다. “지우개 외의 소재를 결합함으로써 다양하고 재미난 지우개 만들기를 시도했던 흔적이 보인다"라고 말하는 소개 글처럼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생산자의 귀여운 시도가 돋보인다. 늑대(혹은 여우)가 악어에게 목줄을 하고 야자수 아래를 유유히 걸어가는 포장지 삽화 또한 인상적이다.
움직이는 눈알 지우개와 동일한 시대에 생산된 수도꼭지와 이를 닦자 지우개. 전국의 어린이들이 지우개를 사용하며 물을 아껴 쓰고, 이도 잘 닦기를 바라는 제작자의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포도 지우개는 지우개 반죽에 기름의 함량을 높여 반투명한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1980년대 후반 생산된 이 싱그러운 지우개는 불투명 지우개에 비해 기능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높은 심미성으로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지 않았을까?
한편,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아 보인다. 포도 지우개와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들. 특히 구구단이 깨알같이 인쇄된 지우개는 아이들이 그것을 외우는데 큰 도움을 줬을 것 같다. 나아가, 구구단 지우개는 반투명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아 제작자가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 쓴 것으로 추측된다.
88 서울 올림픽 기념 지우개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화랑 고무는 88 서울 올림픽 공식 상품화 권장 지정을 받아 다양한 호돌이 지우개를 제작했다. 그 시절의 열기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서랍 속에는 하나씩 잠들어 있을 만한 그 지우개! “지우개 산업의 전성시대였던 시기와 일치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호돌이 지우개는 지우개 전성시대의 산물"이라는 소개 글에 누구든 공감할 것이다.
이 외에도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로 쥐띠 사용자에게조차 외면받은 쥐띠 지우개,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적혀있지만 지나치게 정적인 타이포그래피로 우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크리스마스 지우개 등 실로 다양한 지우개가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실제로 전시 지우개를 제공한 ‘화랑 고무'는 그 당시 일주일에 2개 이상씩 신규 디자인을 출시했다고 하니,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시절이 아닐 수 없다. 전시를 찾아 8, 90년대의 순수했던 감성이 담겨 있기도, 때론 세태가 반영되기도 했던 지우개 디자인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지우개 전성시대>
기간 | 2019년 2월 22일(금) - 3월 27일(화)
운영 시간 | 오후 12시 - 오후 10시, 휴무일 없음
장소 | 오브젝트 홍대점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35길 13)
입장료 |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