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꿈

보호의 회색지대

by 다나




문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절규도 아닌, 설득도 아닌 일종의 선언이었다.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망치로 내리치 맞아도 안 죽어어억”


엄마는 그렇게 소리쳤다. 문 밖에서. 경찰 앞에서도, 나에게도.
그녀의 언어는 방어였다. 분노의 위장 아래 간신히 부여잡은 삶의 끈 같은 것이었다.


엄마라는 여자의 격앙된 손짓은 삿대질로 이어졌다. 경찰조차 체념하고 강제로 문을 열 권한은 없다는 말을 했다. 대치가 이어지는 와중, 현관 앞에서 원영이와 마주쳤다. 나를 보고 다가오던 아이는 경찰 제복을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제가 거짓말한 거예요."


엄마가 스스로를 해치려 했다고 고백했다.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자신을 향해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경찰 앞에서 거짓말이라고 말을 바꾼 아이. 원영이는 얼마 전 전학 온, 부촌으로 유명한 〇〇동에서 온 학생이었다.


“야, 재 00동에서 이사 왔대.”

“오 완전 부자겠다.”


아이들은 호기심과 질투, 동경이 섞인 시선으로 원영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가을에 전학 온 아이가 겨울에도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다니자, 분위기는 곧 수군거림으로 바뀌었다.


“쟤 좀 이상하지 않아?”


가난은 그렇게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이시대는 가난을 없애기보다는 그냥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드는 데 힘을 쓴다. 그렇게 사람들은 고시원으로 쪽방, 옥탑방, 반지하방 같은 집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원영이 역시 부촌으로 유명한 동네의 지하 쪽방에서 살던 아이였다.



지하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꿈

원영이와 엄마는 가정폭력을 피해 시골에서 야반도주했다. 서울에 대한 환상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선택한 동네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사람을 숨기려 애쓰는 곳이었다.


처음엔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다음은 방치된 지하 창고에 터를 잡았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개입은 빠르게 시작됐다. 부유한 동네인 만큼 긴급지원금은 내가 있던 지역보다 10배 가까이 많았다. 덕분에 빠르게 임대주택을 분양받아 전학을 오게 된 것이다.


콘크리트 지하방에서 선풍기하나 없이 엄마와 부둥켜안고 여름을 보낸 원영이가, 지역주민센터와 사기업의 도움으로 이사를 왔다. 외각의 1층 빌라의 거주가 결정되는 날. 엄마는 구청의 담당 주무관을 붙잡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기서 3년만 잘 살면, 우리도 아파트로 가는 건가요?”


아이는 치킨을 시켜 먹고 절인 무 국물을 화장실 변기가 아닌 부엌 하수구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부엌 선반에는 나와 함께 만든 노란색 뜨개질 수세미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집을 대하는 태도는 변했다. 새벽일을 마치고 낮에 자야 했던 엄마는 햇빛이 짜증으로 느껴지자 창문을 달력으로 꼼꼼하게 막아버렸다. 그 후부터 컴컴한 방 안에서 엄마 없는 밤과 새벽을 보내던 아이는 먹방 영상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쓰레기는 쌓이고, 이불과 옷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강아지의 오줌과 똥, 음식물 찌꺼기로 막힌 싱크대 때문인지 절인 무 국물은 다시 화장실 변기로 향했다. 배달음식을 아이가 얼마나 시켜 먹은 건지 무절임 국물로 집안이 시큼하고 새콤했다.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를 데리러 간 아침, 창문 너머로 부르자 아이는 짧게, 단단히 말했다.


“씨—.”


그 한 단어는 욕설이었지만, 씨- 같은 환경에서 밤을 지새운 아이가, 우아한 언어로 응답하길 기대하는 건 어른의 욕심일 것이다.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내 목소리에 아이는 더 화가 난 듯했다. 그게 잠을 깨워서였는지, 다정함이 낯설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작고 갈라진 외마디 욕설이, 점점 높아져 온 집안을 채웠다. 이토록이나 거친 말이 아이의 유일한 방어였다.




타인의 삶을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는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엄마는 자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아도 특별한 조건부과제외 사유가 없는 경우, 조건부수급자로 자활에 참여해야한다.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제출해서 공단을 통해 근로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마저도 안 하려 들면 1인 가구의 생계급여만 지급된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는 진단서도, 서류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조건부 수급자에서, 생계급여만 받는 1인 가구로 전락했다.


사실 나라의 요구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근로 능력이 없다는 증빙을 요구받고도, 조건제시유예를 시켜주려고 진단서를 떼러 가자고 해도 몸이 아파 병원에 갈 수 없다는 변명만 반복됐다. 무기력은 언어를 복제하고, 그 복제된 언어는 다시 제도를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생계에 대한 어려움이 시작된다. 나라에서 왜 어려운 사람에게 그냥 돈을 안주냐는 한탄과 함께.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그 변명 같은 현실을.


본인이 움직여야 아이를 구할 수 있고, 움직이기 위해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깊은 우울은 그 의지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나는 그 부모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학교전담경찰에 장기결석으로 인한 아동학대 수사 의뢰서같은 문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 부모를 향해 게으르다 손가락질할 생각이 나는 없다.


나라에서 돈줄을 끊어버려야 일을 한다고.

저렇게 돈을 무작위로 퍼주니 일을 안 하려고, 요리조리 수 쓰는 거 아니냐고 말할 생각도 나는 없다


나는 저 어머니처럼 남편의 폭력에 목숨을 위협받아본 적이 없다.

눈앞에서 내 새끼가 발로 걷어차이고 벽에 던져져 엥 하고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를 안은 채 한여름 곰팡이가 가득한 습한 지하방에서 선풍기 없이 잠든 적도 없다.

내 아이가 눈앞에서 다치는 걸 뻔히 보면서도 생계 걱정으로 아무 말 못 해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삶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괴로움에 발목 잡힌 만성적인 우울감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무기력함을 이해해보려 한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 없는 방에 남은 우리 모두

프린터가 원영이와 같은 아이들 관련 서류를 토해낼 때마다, 나는 그 기계음보다 내 마음에서 먼저 삐걱이는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게으르다고. 속이려고 든다고. 나라에서 돈을 너무 쉽게 줘서 그렇다고.

누구의 책임인지 묻는 목소리가 많지만, 나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책임의 유무를 내가 판단하지 않기로 한 순간 아이에 대한 보호는 사라진다.

결국 해야 할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말들은, 말이 안 되는 현실이 만든 것이다.

학대와 생존, 무기력과 죄의식이 뒤엉킨 이 구조 안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방 안에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주 가끔, 그 방 한쪽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문틈 사이로 들어온 빛 한 줄기에, 아이가 잠시 고개를 들고 날 쳐다보던 그날처럼.

노란색 뜨개질 수세미를 만들며 시덥지 않게 꺄르르 웃던 그날처럼.

그 기억이 오래 머물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는다.
그 한 줄기의 빛이 그 아이의 다음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니까.







어른인 우리에게 남는 질문

가난을 게으름으로 번역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극심한 폭력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의 느릿한 걸음을
우리는 게으르다 말할 수 있을까요?

그 곁에서 자란 아이를, 우리는 어떻게 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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