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계산법

child abuse 2부 ‘좋은 아이의 계약서'

by 다나


이 글은 아동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복수의 상황을 익명화·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아동학대 및 성적 착취 정황을 간접적으로 다룹니다.자극적인 전달을 피하기 위해 인물과 사건은 현실보다 축소·조정되었습니다. 이는 고통을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기 위한 윤리적 선택입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학교에서의 출석 체크는 숫자가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다.

그래서 그 공백은 매번 내게 무거운 질문이 된다.

법은 7일 이상 결석을 주목하라 말하지만 일에 파묻힌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윤리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사례관리 대상자'라는 태그를 달고 내게로 오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이 아닌 서류의 항목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이고 선상님 제발 좀 저 가시네 좀 끄내가이소"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 한쪽다리를 끌며 버선발로 달려나오신다.

좁디좁은 방, 그러나 번들거릴 만큼 닦아놓은 바닥과 주방선반들.

누추함과 반질반질한 성실함이 이상하게도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는 할머니의 삶의 체념과 기대, 성실함들이 섞여 있었다.


몇날 며칠 방에서 나오지 않은 손녀. 할머니는 두 손 두 발 들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어쩌면 두 팔 벌려 누군가 자신을 좀 안아달라는 신호 같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른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어른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만난다.


"지연아 선생님이야 이제 이 문 좀 열까?"

아무런 대답 없던 방안에서 짧은 외마디 욕설이 빽하니 들려온다.

욕설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뒤이어 강하게 터져 나온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건 분노가 아니라 절망의 언어다.

타인인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몸부림이었다.


"지연아 선생님이 너 억지로 안끌어내. 지금부터 딱 10분 줄거야. 10분뒤에 다시 말걸께. 학교 갈 준비하자"

"40분!!!!"


10분 준다는 말에 방안에서 40분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타협. 아주 작은 약속.

나는 문 앞에 앉아, 약속한 그대로 기다린다.

그것이 이 아이와 내가 맺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신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알겠어 40분. 그럼 정확히 40분뒤에 우리 준비하고 문 여는거다."


할머니는 40분은 무신 40분이냐며 지금 당장나오라고 문을 두드리며 난리를 치신다.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지연이가 자기입으로 말한 시간이니 괜찮으니 기다리겠다고 설득시키며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때 방문이 쾅 열리고 지연이가 말없이 돌진해 현관문을 나선다.

뒤도 안돌아보고 혼자 쿨하게 나가버리는 아이를 따라 달려가 재빠르게 팔짱을 끼고 모두 등교한 한산한 거리를 둘이 햇살을 받으며 걸어간다. 학교로 가는 길, 그것은 단순한 등굣길이 아니라 이 아이가 누군가에게 발견되 끄집어내져 다시 세상속에 존재를 선택하는 여정이다.


등교 하는 길목에서 아이는 항상 내게 말한다.

"샘이 내 엄마면 좋은데." 그리고 침묵했다.

이 말 앞에서 나는 무력함을 자각한 채 아이의 곁에 선다. 제도도 체계도 모두 무력해진다.
이 말은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사랑이 부재한 세계에서 자기를 돌봐줄 보호자을 갈망하는 외침일테니.

이후 아이의 침묵은 마치 오래된 방에 내려앉은 먼지처럼 조용히 존재했다.

나는 그 조용함 속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했지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한 아이들은 종종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처럼 느껴진다.

손대면 흩어질까 두렵고, 다가서면 더 멀어질까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그해의 계절은, 내게도 그 아이에게도 유독 무거웠다.



엄마의 ‘나쁜 짓’

지연이가 놀이터에서 흙 파면서 놀기좋아하던 나이의 겨울이었다.

엄마와 놀이터에서 얼은 땅을 파던 어느 날, 할머니의 남자친구였던 노인이 추운데 여기 뭐하냐며 지연이 엄마를 아이와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바람이 매서운 날이었다. ‘추우니 들어가자’는 말은 선의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아이는 설명할 수 없는 장면 하나를 기억 속에 품게 되었다

"왜... 엄마는 그때 웃었을까?"


지연이는 그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조용히 보고 듣기만 했다.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의 나쁜 짓"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한 장을 내게 가져왔다. 자기가 본 것과 느낀 것을 적은 글이었다.


우리는 즉시 외부 상담과 파견 도우미, 가정에 밤시간에 돌봐줄 지원을 연결했다.

보호 기관과 함께 즉각적인 개입이 이루어졌고, 경찰과도 연계되어 조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다 거짓말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법과 제도의 한계 안에서, 절차를 따르되 조심스럽게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모래성 일지라도 자신의 세상이 부숴질게 뻔한 진실의 언어를 내뱉으라고 솔직히 말하라며

우리는 감히 아이에게 ‘말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입을 다문 아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결국, 지연이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의 조용한 문소리 속에서 아이는 또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놀이터의 그 장면을 떠올린다.

엄마가 왜 그때 웃었을까 의아해하면서.



립스틱, 생존의 색깔

"지연아, 프로필사진에 이거 뭐야? 입술 빨간 건 앱 쓴 거야?"

내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어른 같죠?"

어른같아 보여 뿌듯해 보이는 자랑과 어설프게 보인거면 어떻게 하나라는 부끄러움 사이에서 아이는 계속 피식거렸다. 그리고 곧, 지연이는 립스틱을 어떻게 얻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다양한 화장품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코너가 아이의 세계였다. 시연용 색을 살짝 얹고, 갖고 싶음으로 품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고 했다

“샘, 돈이 없으니까… 다들 보통 그렇게해요.”


나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옳고 그름을 말하는 대신, 왜 거기까지 밀려났는지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뒤, 그래도 어른으로서 한마디를 보탠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네가 잘못 되지 않는 길을 같이 찾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한다.
“근데 진짜 립스틱 사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지연이는 자신의 얼굴에도 색을 칠했다.

색을 다루는 감각이 섬세했고 브랜드마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했다. 그날 나는 핑크의 계보를 처음 알았다.

베이비핑크, 파우더핑크, 텐저린핑크, 밀크핑크, 페일핑크, 로즈핑크, 튤립핑크.... 끝도 없었다.



“선생님은 텐저린핑크, 저는 페일핑크.”


우리는 컴퓨터 앞에서 갖고 싶은 립스틱을 검색하며 미래를 상상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면요, 연봉은 얼마예요?”

“그 길을 가려면 먼저, 이번 학기 출석을 채우자.”


나는 약속했다. “이번 학기를 끝까지 채우면, 네가 말한 그 색 하나를 선물할게.”


그러자 지연이는 싸인펜으로 계약서를 썼다.
A4용지 한 장.

제목: 루쥬 코코 플래쉬 118 Freeze

내용: 나는 성실히 학교에 다닙니다.
그리고 내 지장을 받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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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에 이 장면은 귀엽고 따뜻했지만 한편으로 잔인했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계약서를 쓰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좋음은 세상의 모순을 꿰뚫고 마지막 남은 아이의 생존이었다.



방학의 공백

"택시비가 수십만원이나 나왔다니께요 아이고오"

할머니의 탄식이 전화기를 가득 메웠다. 도대체 방학기간동안 아이는 택시를 타고 어디를 다닌걸까. 기관의 추적끝에 아이가 할머니 카드를 몰래 들고 택시를 타고 지역의 경계를 맴돈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뒤늦게 그 흔적을 따라가 아이를 찾았다. 낯선 성인과 함께 있는 아이를 발견했고 다행히 사건은 더 커지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가 미성년자임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택시비를 준다고는 안했어요!"

이토록이나 어리석을수 있을까.

"지연아... 택시비가 더 나왔잖어. 너 왜 총 비용에서 택시비는 빼고 생각해"


아이는 내게 몸을 촥 붙인채 차안에서 속닥거리며 이야기했다.

"샘 근데 저 아무일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못했어요. 우리엄마가 뭣 때문에 그렇게 웃음이 난건지 궁금해서 그런거예요. 돈도 필요하고...."


저 남자들도 분명 나쁘긴 했지만 더 악의적인 사람을 니가 못만나봐서 지금 이렇게 얘기 할 수 있는거라는 잔소리도 아닌 나의 절규에 가까움 외침을 터뜨리는 내게 아이는 한숨을 쉬며 나를 빤히 응시하다 고개를 숙인채 휴대폰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엄마도 아니면서 왜케 오바해요. 또 오바한다. 진짜."

지연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틀린 것은 택시비 계산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위험비용을 아직 계산 할 수 없었다.



사소한 다정함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은 길다.

그동안 나는 아이 한 명을 끈질기게 쫓아다녔지만, 그 아이를 ‘구해 낼’ 수는 없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잔인하게도 오래 걸렸다.


제도의 언어로는 닿지 않는 밤이 있고, 보호의 손길이 머무르지 못하는 새벽이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수없이 무너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돌봄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끝까지 보호하지 못한 실패라 부른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하루를 걷는다.


정답은 없고 매 순간 판단은 고통스럽다. 옳은 선택을 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윤리적 결단과 행정 조치는 아이들의 돌발보다 항상 늦다.


이전병원에서 행정적 문제를 일으킨 수많은 이력 때문에

정신병원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던 아이들,
판사님도 안타까워하며 갱생의 기회를 몇 번 줘도
결국 소년원으로 가버리는 아이들,
오은영 박사님이 와도 치료하지 못할 거라는
자조 섞인 농담 사이로,
어떤 구조로도 구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결국 이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면
이 사회로 나와 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할 텐데,
먼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며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다.


결국 지연이는 사라졌지만 나는 다음 아이는 사라지지 않게 도와주겠다는 결심과 끈기로 조금씩 삶을 다잡아 나간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내가 정말 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보호하고 도울 수 있을까?”
그 물음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다시 사라질 것이라는 현실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여전히 말을 아낀다. 나는 다시 “40분 뒤에 문을 열겠다”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른 지연이들의 문을 두드린다. 그날이 언제든,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나는 문 앞에서, 약속한 40분을 함께 기다리는 어른이고 싶다.





어른인 우리에게 남는 질문

아이가 선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하지 못한 채 어른들이 만든 세상 안에서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그 아이를 탓하는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어른의 부재를 증명하게 됩니다.

아직 판단이 미숙한 청소년을 꾀어낸 어른의 범죄 앞에서

우리는 정말 아이에게 그 ‘책임’을 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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